경제·금융 정책

[썸오리지널스]양적완화, 코로나 발 경제위기 긴급처방의 약발은?




인류가 처음 맞닥뜨린 질병. 당장 고칠 수 있는 약도, 예방할 수 있는 백신도 없는 코로나19. 이 바이러스는 생명만 위협한 게 아니라 전 세계에 전에 없던 새로운 경제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바로 팬데믹 발(發) 경기 침체입니다. 지금까지 경기침체가 금융위기나 외환위기처럼 경제 테두리 안에서 발생해 비교적 진단과 처방이 뚜렷했다면, 이번엔 좀 다릅니다. ‘L자형’ 장기 침체에 들어갔다는 전문가가 있는가 하면, ‘V자형’ 급반등을 예상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침체의 원인이 경제 밖의 일이다 보니 다들 우왕좌왕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의사들이 코로나19 약이 없다고 환자를 포기하지 않듯, 각국도 가능한 모든 처방을 동원해서 이번 경기 침체를 극복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가장 ‘핫’한 처방은 ‘양적 완화’입니다. 전 세계 금융당국이 코로나19 경제충격 완화를 위해 너도나도 돈을 풀면서 실물 경제에 무려 5조 달러가 투입되는 효과를 냈다는 관측도 나왔죠. 과연 처방은 정확한 걸까요? 맞다면 어떤 효과와 부작용이 있을까요?






같은 바이러스에 노출되어도 건강한 사람은 가볍게 앓고 넘어가지만, 기저질환이 있거나 면역력이 약할 경우 죽을 만큼 아플 수도,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실, 다들 알고 있죠? 코로나발 경제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나라의 경제 체질에 따라 증상도 각기 다릅니다.

우선 GDP 1위, 미국 경제의 상황은 어떨까요? 이 환자는 기축통화국이라 튼튼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는 데다, 경제 대국이란 타이틀에서부터 알 수 있듯 기본적으로 아주 건강했던 환자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매우 나쁩니다.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수 1위를 달리고 있는 데다 전파 속도도 빨라서, 실물경제가 마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실제 미국에선 최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3월 26일 기준, 노동부)가 328만 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300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한국 경제는 어떨까요? 이 환자는 다행히도 미국과 다르게 코로나19 확산이 더뎌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갖고 있던 경제 면역력이 약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미국 경제와 비교도 안 되게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수출의존도도 높습니다. 평소에 다른 나라들이 가벼운 감기로 지나갈 때 혹독한 독감으로 끙끙 앓을 만큼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돈이 조금만 생기면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가는 기저질환까지 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중앙은행, 즉 한국은행은 지금까지 기준금리를 내려서 시중의 돈을 늘리는 방식을 써왔습니다. 기준금리라는 건 은행에서 적용하는 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리입니다. 쉽게 말해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은행의 금리도 낮아지는 것이죠. 그럼 은행에 돈을 저축해뒀던 사람들은 돈을 꺼내서 쓰는 게 더 이득일 테고, 돈을 빌려서 쓰는 것도 큰 부담이 되지 않으니까 너도나도 돈을 더 많이 쓰게 됩니다. 이렇게 시중에 돈이 많이 돌게 되면 경제는 살아나기 마련이니까, 보통의 경제 의사들이 가장 먼저 택하는 방법이 바로 ‘기준금리 인하’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국경제 환자와 한국경제 환자는 모두 기준금리 처방이 통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미 너무 낮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해와서 조금 더 낮춰서 제로금리를 만든다 한들 큰 효과를 볼 수 없는 상황이죠. 평소에 항생제를 남발한 환자에게 약발이 잘 듣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럴 때 처방하는 좀 더 센 약이 바로 양적완화입니다. 양적완화는 말 그대로 ‘돈의 양으로 승부하겠다’는 뜻입니다. 국가의 중앙은행이 직접 나서서 시중에 돈이 많이 돌도록 하는 것입니다. 필요하면 돈을 찍어내더라도 말이죠. 대표적인 방법은 중앙은행이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다시 사들이는 것입니다. 이번에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역사상 첫 양적완화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달러와 달리 한국의 원화는 무제한으로 풀 수 없습니다. 무턱대고 원화를 풀었다가는 원화가치가 급락(환율상승)하면서 금융시장 불안감을 오히려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 연준과 한국은행이 내린 양적완화 처방은 좀 다릅니다. 연준이 처방한 약의 이름은 ‘무제한 양적완화’. 원래는 7,0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매입하려다가 그 한도조차 없애버려서 ‘무제한’ 양적완화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시장이 원하는 만큼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사들이겠다는 것입니다. 연준이 국채나 MBS를 사게 되면 반대로 국채나 MBS를 갖고 있던 금융사의 손에는 채권 대신 현금이 쥐어지게 됩니다. 금융사가 그 돈으로 기업에 투자하고, 소비도 하면서 경제가 살아나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연준은 또 우량한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면 회사채도 지원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원래 코로나19의 빠른 확산으로 경기가 빠르게 식고 있는 만큼 아주 센 약을 처방한 것입니다.



반면 한은의 첫 처방은 아직 소심하고 조심스럽습니다. 한국은행은 앞으로 3개월간 환매조건부채권(RP)를 제한 없이 매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에 돌입한 것입니다. RP는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후에 정해진 가격으로 다시 사는 것을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입니다. 채권을 담보로 맡기고 현금을 빌리는 셈이죠. 한은이 무제한이라고 말했지만, 미국의 무제한과는 좀 다릅니다. RP 발행규모가 약 70조원이라 70조원 정도가 공급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한은이 미국처럼 회사채 시장과 기업어음(CP) 시장에 뛰어들어 민간기업을 직접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금융기관에 조금씩 돈을 풀 게 아니라 기업에 직접 돈을 풀어야 효과가 있다는 논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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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적완화의 약발은 어떨까요? 우선 미국 경제는 급한 불은 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연준의 발표 이튿날 뉴욕 증시는 큰 폭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증시는 요동치고 있습니다. 미국의 코로나19 확산이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한국형 양적완화’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시선은 회의적입니다. 지난 2일, 한국은행은 시중에 처음으로 5조 2,500억 원을 풀었습니다. 금융회사들의 요청자금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량증권만 사들이다 보니 금융사들이 한은으로부터 필요한 만큼의 돈을 빌리지 못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소극적 양적완화는 시중에 돈 풀기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은이 아무리 RP를 매입해도, 금융사들은 적극적으로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그냥 쌓아 두기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같은 기축통화국이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양적완화’에 첫발을 뗀 한국 경제. 과연 ‘한국판 양적완화’는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를 막아주는 특효약이 될 수 있을까요? 한국 경제가 이번 처방의 부작용 없이 가뿐하게 달릴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도해보겠습니다.

/정현정·정민수 기자 jnghnjig@sedaily.com

정현정·정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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