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손쓸 수 없는 환자에게 내려줄 수 있는 최선의 처방은 무엇일까. 바로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의료인들은 할 일이 없다. 하지만 신음하는 환자의 손을 잡아줄 때, 고통은 서서히 물러가기도 한다. 소설가 이승우는 소설 쓰기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어찌할 수 없는 아픔에 손을 내미는 것이 소설 쓰기이자 문학이며, 그렇게 뻗은 손은 누군가의 손을 불러오고 아픔을 덜어내기도 한다.
신간 ‘소설가의 귓속말’은 이승우가 오랜 시간 글을 쓰면서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 그리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을 담아낸 문학 에세이다. 그가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 작가는 어떻게 탄생하는지, 작가와 독자가 지녀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등을 털어놨다. 그가 감명 깊게 본 국내외 작품들도 직접 조명하고 해설했다.
이승우는 스물 셋에 등단해 40여 년을 글쓰기에만 매달려왔다.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그의 작품 중 ‘생의 이면’ ‘미궁에 대한 추측’ 등이 유럽·미국 등에 번역돼 소개됐다. 한국 작가 중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큰 작가 중 한 명으로도 꼽힌다.
쉼 없이 글쓰기를 이어온 그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을까. 이승우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로 갈음한다. “영감이란 약삭빠른 작가들이 예술적으로 추앙받기 위해 하는 나쁜 말”이라고 말이다. 작가에게 영감은 누군가로부터, 어딘가로부터 오는 게 아니다. 영감이란 창작자 내부에서 불러 일으켜지는 것이며 그 일으킴을 이해할 때 창작자의 이름을 얻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우리 내부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가득하다”며 누가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정하는지 살피고 탐구하고, 자기를 들여다보는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글쓰기를 위한 조언도 제시했다. 중요한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절실한 것’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관여되지 않은 절실함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며, 절실한 것만 쓰려고 할 때 자신은 ‘나 아닌 누구’, 혹은 ‘무엇’을 대표하려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진다고 설명한다.
욕망의 억제, 세상과의 거리두기, 초연함. 이승우는 자기 문학을 하려고 하는 창작자들에게 이 세 가지를 주문한다. 그는 그동안 소설을 쓰면서 앞서 언급한 세 가지를 기준 삼아 글을 써왔다고 고백한다. “유혹과 위협 앞에서 때론 긴장하고 때로는 초연하게 써온 것이, 그처럼 아슬아슬한 것이 문학이었다.” 1만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