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국내 코로나19 진단시약(진단키트) 생산업체인 씨젠 본사를 방문한 지난 달 25일. 천종윤 씨젠 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진단시약 개발 과정과 성과 등을 조용히 설명했다. 곁에 있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 장관은 “카자흐스탄에서도 (씨젠의 진단시약을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한 데 )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천 대표는 이어 이탈리아와 영국, 프랑스서도 자사의 진단시약을 쓴다고 설명하자 문 대통령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문 대통령을 포함해 주변 참석자들이 씨젠의 진단시약이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쓰이는 줄 몰랐다는 표정을 짓자 천 대표는 “언론에 알려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문 대통령은 “(이런 좋은 일은) 홍보를 많이 하면 좋을 것 같다”며 사견을 밝히자 천 대표는 거듭 ‘진단시약을 만들어 전세계에 보급하는 역할이 알려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을 밝혔다. 세계 각국에서 씨젠의 진단시약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한국거래소 상장기업이기 때문에 진단키트 개발을 계기로 요란스럽게 홍보하지 않겠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대통령 앞에서 피력한 것이다.
천 대표는 “저는 그냥 씨젠의 진단시약을 전세계 국가들이 부족함 없이 쓸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하고 있다”며 자세를 낮췄다. 대통령이 방문하면 그 자체로 주가상승에 호재가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들은 ‘홍보자료’를 만들어 뿌리기에 바쁘지만, 천 대표는 이와 거리가 한참 멀었던 것이다.
다른 진단시약업체 코젠바이오텍도 요란한 홍보를 자제했다. 문 대통령이 씨젠을 방문하기에 앞서 정부가 가장 먼저 방문일정을 조율한 곳은 코젠바이오텍이었다.
코젠은 국내서 진단시약 긴급사용승인을 처음 받은 곳이라 상징적인 의미도 컸다. 하지만 코젠은 문 대통령의 방문을 정중히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본사 건물이 협소하고 복층이어서 많은 수의 외부인이 한꺼번에 방문하기에는 공간적인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 대통령의 방문을 통해 회사를 홍보할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접은 것이다. 코젠 내부에서는 “회사 CEO(남용석 대표)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 보다 진단시약 생산에 더 힘쓰고 싶다는 의지도 반영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실제 남용석 코젠 대표는 쏟아지는 언론 인터뷰 제의도 모두 거절하고 진단시약 생산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 대표는 본지와 깜짝 통화에서 “전화를 못 받아 미안하다”며 “(코젠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외부에 회사를 알리는 것보다 더 많은 진단시약을 생산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국내 두 업체가 스스로 자세를 낮추면서 바이오 업체들에 대한 신뢰를 키우고 있다는 긍정 평가가 나온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바이오 버블 사태에서 봐 왔듯이 일부 업체들은 조그만 기술이라도 개발하면 홍보를 못해 안달을 내지만 될성부른 업체들은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기술이 숙성될때 까지 연구와 개발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은 한국의 바이오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도 굉장히 긍정적인 사례”라고 호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