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뒷북정치] '강남스탈린·종북세'... 태구민은 왜 '빨갱이'로 조롱받나

탈북민의 사상 첫 지역구 의원 당선에 외신도 관심

국내 커뮤니티에선 여권 지지층 중심으로 조롱 봇물

DJ 때부터 보수세력에 색깔론 공격 당하며 恨 쌓여

중도층까지 포섭해 선거 대승하자 자신감 갖고 역공

일부 보수층 "김정은은 비판 않고 왜 太만" 반박도

당선 직후의 태구민 당선인. /연합뉴스당선 직후의 태구민 당선인. /연합뉴스



제21대 총선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다음날인 지난 4월16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서비스(SNS)에서는 돌연 ‘인민이 편한 세상’ ‘간나아이파크’ ‘푸르디요’ ‘내래미안’ ‘동무센트레빌’ ‘천리마 아파트’ ‘력삼래미나이’ ‘아오지 리버파크’ 등 아파트 브랜드 이름에 북한을 빗댄 패러디 물이 봇물을 이뤘다. 이들 패러디 물은 기발한 발상으로 많은 이의 이목을 끌었으나 상당수 사람들은 애초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나중에 ‘태구민(태영호) 당선 이후 대형 건설사 등이 고민 중인 강남 아파트 브랜드 명 후보’라는 설명이 붙고 나서야 이들 아파트 이름이 태구민 미래통합당 당선인(서울 강남갑)을 조롱하는 내용인 것을 이해했다. 일각에서는 보수 성향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총선 승리로 대한민국이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성향 국가가 됐다’는 의미인 줄 착각하고 해당 패러디 물들을 열심히 공유하다가 제작 의도를 안 뒤 정색하고 이를 중단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태구민 서울 강남갑 미래통합당 당선인. /서울경제DB태구민 서울 강남갑 미래통합당 당선인. /서울경제DB


탈북민의 사상 첫 지역구 당선에 외신들도 관심


태구민 당선인은 탈북민 출신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인물이다. 탈북민 출신 중에서는 지난 19대 총선과 이번 총선에서 조명철 전 의원과 지성호 당선인이 각각 새누리당(미래통합당 전신)과 미래한국당(미래통합당 비례위성정당) 비례대표로 당선됐으나 지역구 의원으로는 태 당선인이 처음이었다.

태 당선인은 서울 강남갑 지역구에 출마해 6만 표 이상을 득표해 58.4% 득표율로 김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20%포인트 가까이 큰 격차로 따돌렸다. 그는 16일 당선이 확실시 되자 눈물을 흘리며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그는 이날 “대한민국이 제 조국이고 강남이 제 고향”이라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 당선인은 영국 주재 북한 공사로 있다가 2016년 한국에 망명했다. 그는 그간 여러 매체를 통해 북한 실상을 소개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태 당선인은 특이 이력의 소유자답게 곧바로 300명의 총선 당선자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한 명이 됐다. 특히 해외 매체들의 관심이 높았다. 16일 로이터통신은 “전직 북한 외교관인 태 후보가 망명 4년 만에 한국에서 가장 근사한 동네의 국회의원이 됐다”고 보도했고, 영국 BBC는 “놀라운 승리”라며 “목숨을 걸고 남한에 온 다른 탈북자들에게는 너무나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조혜실 통일부 부대변인은 지난 17일 태 당선인 등에 대해 “정부가 총선 결과에 대해 공개적인 자리에서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대북정책을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21대 국회와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는 17일 ‘서울시 강남구 부패의 소굴로 전락’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강남구는) 부자들과 특권층이 많이 살고 있어 ‘서울보통시 강남특별구’라고 불린다”며 “이곳에는 부패 타락한 생활에 물젖은(물든) 자들이 우글거리는 각종 유흥시설과 유곽들이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 선전매체가 갑자기 한국의 특정 지역을 겨냥해 비난을 내놓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다분히 태 당선인을 겨냥한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조감도 패러디 물.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조감도 패러디 물.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빨갱이’ 등 조롱 봇물


태 당선인의 국회 승선에 대한 국내 반응도 뜨거웠다. 다만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은 그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 쪽에 대부분 치우쳤다. 아파트 이름 패러디뿐 아니라 ‘강남구 력삼동 립국 절차안내’ ‘강남스탈린’ ‘신론현’ ‘종북세’ 등 그를 지지한 강남 지역구와 지역민들을 비꼬는 반응도 잇따랐다.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예 ‘서울 강남구 재건축 지역에 탈북자 새터민 아파트 의무비율로 법제화 시켜주세요’라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이 청원은 게시판이 올라온 지 고작 이틀이 지난 18일 오후 10시 현재 무려 12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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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 당선인에 대한 게시글과 댓글 작성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 여권 핵심 지지층으로 추정됐다. 정치 지형이 양극화되면서 그에 대한 반응도 극과 극으로 갈렸기 때문이다. 선거 대패로 상당수 보수 성향 지지자들이 사실상 ‘그로기’ 상태에 빠지면서 총선 관련 게시글은 대부분 여권 지지자들이 주도했다.

태 당선인에 대한 주된 비난 포인트는 그가 북한에서 온 지 4년 밖에 안 됐는데 너무 빨리 국회의원이 됐다는 점, 그의 당적이 총선에서 대패한 보수 야당이라는 점, 하필 그의 지역구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촌으로 꼽히는 강남이라는 점 등이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태 당선인의 완전한 사상 전환 여부를 못 믿겠다’ ’이중 스파이가 되는 것 아니냐’ ‘중간에 월북해 주요 국가 기밀을 북한으로 빼돌리면 어떡하느냐’는 등의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무엇보다 그를 ‘빨갱이’로 비난하는 댓글과 게시물은 어느 커뮤니티든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자료제공=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자료제공=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수십년 색깔론 공격에 지친 여권 골수 지지층, 자신감 갖고 역공

태 당선인을 향한 여권 지지층의 이 같은 색깔론 제기는 과거 선거 때와 비교하면 굉장히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지금까지 색깔론으로 선거 때마다 곤욕을 치른 세력은 태 당선인이 소속된 보수당이 아니라 늘 현 여당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계열 정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권 후보였던 시절부터 스스로 ‘지긋지긋하다’ 할 정도로 수십 년 간 색깔론 공격을 받아왔다. ‘국가 기밀을 북한에 빼돌릴 수 있다’는 우려 역시 과거 통합진보당 등 진보정당에 오랫동안 붙었던 꼬리표였다. 민주당에서도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임수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상당수 정치인들이 보수 지지자들로부터 같은 의심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태 당선인을 향한 여권 핵심 지지자들의 엄청난 관심과 조롱·비아냥이 일종의 ‘한(恨)풀이’ 성격을 띤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영남 지역과 함께 보수의 텃밭으로 꼽히는 강남이 현 여권을 그동안 ‘종북’ ‘좌파’ 등으로 분류해 외면해 놓고 정작 보수 당적이면 탈북자라도 뽑아준다는 사실을 알자 이를 공격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는 태 당선인뿐 아니라 강남이라는 지역 자체도 조롱 대상에 늘 함께 묶인다는 점을 감안한 해석이었다. 조롱의 대상이 된 지역이 지역주의 텃밭의 대명사로 꼽히는 대구·경북, 호남 등이 아니라 서울 한복판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한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180석을 석권하는 대승을 거두자 중도층까지 모두 여권 지지자들과 정치적 뜻을 공유하게 됐다는 자신감도 이른바 ‘빨갱이’ 역공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상당수 커뮤니티에서 야권 지지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김정은엔 한 마디 비판도 내놓지 않다가 왜 태구민만 보수 정당 소속이라는 이유로 조롱하느냐’는 등 두둔 발언을 하면 반대 진영 지지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태구민이 광주(광역시)에서 당선됐으면 (통합당과 지지자들이) 가만히 있었겠느냐” “태구민이 민주당으로 나왔으면 빨갱이라고 더 공격당했을 게 분명하다” 등의 반박을 곧장 내놓았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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