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모든 이슈를 삼켜버리기 전까지 가장 뜨거운 뉴스거리는 총선이었다. 예전 같으면 언론의 관심이 온통 국회의원 선거에 집중됐을 것이나 이번에는 코로나19 사태에 묻혀 정책이 실종된 점이 안타깝다. 이번 국회가 5월로 마무리되고 총선에서 뽑힌 선량들이 21대 국회를 구성하면 4년의 임기가 새로 시작될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시작은 막연한 기대를 불러오지만 이번에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국내외에 산적한 난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경제 살리기,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신산업 진흥, 에너지 정책, 환경과 지구온난화, 그리고 이제 주기적으로 닥칠 감염병 문제까지 다 열거하기도 벅차다. 여기에다 재앙적으로 다가오는 인구문제 등 한두 가지만 해도 해결이 어려운 사안들이 한꺼번에 닥치고 있다. 이른바 ‘퍼펙트 스톰’이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앞으로 우리 일상과 사회를 바꿀 것이며 이 변화에 잘 대처하는 국가가 승자가 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어렵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대책을 빨리 마련하고 일관성 있게 집행해야 한다. 우리 민족은 항상 벼랑 끝에서 기적 같은 적응과 회생 능력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21대 국회에 주어진 책무는 실로 막중하다.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않는 국가를 위한 합리적 판단이 필요하다.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경제나 정의의 논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냉철한 합리성이 모든 문제의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
지금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휩쓸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를 비롯해 많은 기술 용어들이 일상에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이에 따라 사회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숨 가쁘게 변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효시인 아이폰을 스티브 잡스가 처음 들고 나온 것이 불과 13년 전이지만 이제 스마트폰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는 이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문제의 속성을 파악하고 그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한다. 지금 세계적 변화의 동력은 과학기술 발전이다. 예전에는 과학기술이 사회의 변화에 따라갔지만, 지금은 과학기술이 사회 변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대응의 선봉은 마땅히 정치인들이 서야 한다. 법과 제도를 만들고 자원도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치인들이 과학기술을 대하는 인식은 아직도 산업화 시대의 시각, 즉 과학기술은 경제와 산업에 필요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 말로는 과학기술이 산업 발전의 도구를 넘어 삶의 질 향상과 사회문제 해결에 필수적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그러한 인식이 체화돼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정책과 입법에 그러한 인식이 반영돼왔을 것이다. 겉으로는 규제 혁파를 외쳐도 실제 행동은 변화의 방향에 역행하는 일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왔다.
우리 국회의 위상은 그동안 계속 강화돼 이제 사회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됐다. 그 힘이 합리적 방향으로 사용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 하나가 될 것이 틀림없다. 코로나19 방역에서 보듯이 국민의 역량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려면 지금부터는 정치를 움직이는 큰 축 중의 하나가 과학기술이 돼야 한다. 정치인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자랑거리가 돼서는 안되고, 오히려 과학기술에 대한 무지가 수치가 돼야 한다. 유럽 국가 중 코로나19 사태에 성공적인 대처로 인기가 올라간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방역정책에 대해 “우리의 행동과 정치적 행동의 기준은 과학자들과 전문가들이 말한 것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21대 국회에서는 정략이 아닌 과학기술로 움직이는 정치를 보고 싶다.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비전이 국회의원의 능력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