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항공편의 지연·연착이나 결항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나 승객들이 이로 인해 입은 피해를 항공사로부터 배상 받기는 쉽지 않다. 항공사의 운송약관을 보면 대부분 ‘항공권 등에 표시된 시간은 보증되는 것이 아니고 예고 없이 변경 가능하다. 단지 항공사가 예정된 운항시간을 준수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승객이 변경된 시간을 수용할 수 없을 경우 운임을 환불한다’고 돼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국제항공운송계약에 관한 법률관계는, 출발지와 도착지 모두 ‘국제항공운송에 있어서의 일부 규칙 통일에 관한 협약’ 가입국이라면 위 협약이 민법·상법에 우선해 적용된다. 이른바 ‘몬트리올 협약’으로 불리는 이 협약 제19조는 승객과 수하물의 지연에 대한 운송인의 원칙적인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단서 조항에서 운송인의 면책사유도 규정했다. 운송인이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취했거나 그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입증하면, 지연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필자가 승객들을 대리해 A항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당초 베트남에서 새벽 1시35분경 출발하여 같은 날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항공편이 항공기의 연료계통 결함을 이유로 출발이 계속 늦어졌다. 탑승구에서 대기하던 승객들이 계속 항의하자 결국 A항공사는 새벽 6시50분경 승객들을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시켜 숙식을 제공했다. A항공사는 고장 난 위 항공기의 수리를 완료한 후 해당 항공편을 당초 출발 시간에 약 14시간30분 지체된 같은 날 16시5분경 인천으로 출발시켰다.
연착에 따른 승객들의 손해배상청구에 A항공사는 몬트리올 협약 19조에 따라 면책을 주장했다. 평상시 항공기의 점검을 철저히 했음에도 이 사건에서의 연료계통 결함은 발견할 수 없었고, 최대한 신속하게 항공기의 수리를 완료하여 지연을 최소화했다고 주장했다. 승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등 필요한 보호 조치도 다 취했다는 입장이었다.
서울중앙지법은 A항공사가 위 승객들에게 정신적 손해배상금(위자료)을 지급할 것을 선고했다.(서울중앙 2017가단94820) 재판부는 ‘A항공사가 항공기에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사전에 발견하였고 이를 수리할 공구가 구비돼 있지 않아서 운항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음에도, 승객들에게 5시간20분이 지난 뒤에야 숙식을 제공한 점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면 A항공사가 승객들의 피해를 피하기 위하여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다하였거나 그러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승객, 항공사 모두 항소를 포기해 판결은 확정됐다.
그간 법원은 승객들이 연착·결항을 이유로 항공사를 상대로 내는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객들에게 엄격한 입증 책임을 요구하거나 항공사의 면책사유를 폭넓게 인정하며 대부분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위 판결은 이러한 법원의 기존 입장에서 진일보하여, 현재 항공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현재의 보상규정과 이에 의지해 소비자 보호에 무심한 모습을 보여 온 항공사의 행태에 경종을 울려 소비자의 권익 향상에 기여한 측면에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