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금융권에 치명상을 안긴 가운데 가장 취약한 부문으로 꼽히는 캐피털사들이 ‘급전’을 조달해 숨통을 트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장기화시 유동성 악화로 버티기 전략은 한계에 부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이 때문에 그간 비은행 부문 확대를 위해 캐피털사의 몸집을 키운 금융지주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캐피털사의 체질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캐피탈이 신한금융지주로부터 2,000억원을 대여받았고, BNK캐피탈과 JB우리캐피탈·DB캐피탈 등이 이달 들어서만 지주사나 계열 금융사로부터 1조1,260억원을 조달받았다. BNK캐피탈은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으로부터 각각 2,000억원, 3,5000억원의 금전대여를 약정했고, JB우리캐피탈도 전북은행 1,550억원, 광주은행 1,850억원 등 총 3,400억원의 한도 대출을 승인받았다. DB캐피탈도 DB손해보험으로부터 360억원을 대출받기로 했다.
캐피털사의 자금 수혈은 자금조달원인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발행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지난달 여전채 순발행액은 910억원으로 코로나19 사태 전인 1월에만 해도 2조1,650억원이 순발행됐지만 2개월 새 95.7%나 급감했다. 수신기능이 없는 캐피털사로서는 대출 중단도 시간문제였다.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가동했지만 시장금리보다 높자 결국 지주사를 통해 급하게 돈을 꾼 것이다. 실제 채안펀드가 처음 매입한 메리츠캐피탈 여전채 금리는 민평금리(민간 채권평가회사가 시가 평가한 금리의 평균치)보다 높았다.
그나마 지주사에 기댈 수 있는 캐피털사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대주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하는 중소형사들은 결국 부실화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미 대주주가 자금을 대줄 형편이 안되는 중소 캐피털사의 경우 신규 대출 심사를 까다롭게 진행하는 등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캐피털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를 토대로 자산을 빠르게 늘렸다. 조달 비용이 낮다 보니 할부금융과 대출 규모를 크게 확대했고, 금융지주사들도 앞다퉈 캐피털사를 계열사로 출범시켰다. 하지만 수신기능이 없는 상태에서 이자장사가 전부다 보니 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금융권을 긴장시키는 아킬레스건이 됐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캐피털사는 신용등급 A급 이하 비중이 은행·카드·보험 등 다른 금융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며 “자금경색이 심해질 경우 캐피털사의 유동성 위험은 급격히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매여신보다는 거액 여신인 기업 일반 대출 비중이 높은 캐피털사의 부정적 영향이 먼저 나타날 것”이라며 “자산포트폴리오 구성에서 리스크 분산 등의 체질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채안펀드로 급한 불을 끄는 한편 요주의 캐피털사의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안펀드 운용사들이 일괄적인 자금 지원보다 개별 캐피털사의 리스크 관리 역량 등을 보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