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요구대로 기존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라는 틀에서 벗어난 노사정 대화 논의가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임기 내 경사노위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민주노총의 협조가 절실해지자 원칙보다는 실리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회적 대화의 기본 틀인 경사노위를 사실상 ‘패싱’한 것이어서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20일 노사정 관계자에 따르면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와 회동했다. 애초 구체적인 의제 없이 만찬을 하기로 예정됐지만 ‘경사노위 외 사회적 대화 틀 구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리는 지난 17일과 18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잇따라 만난 바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고용위기가 비정규직·서비스업을 넘어 정규직·제조업까지 확대되면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두 위원장 모두 공감했다. 특히 김명환 위원장은 경사노위 외의 ‘코로나19 원 포인트 비상협의’의 취지와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경사노위 외 사회적 대화 틀 구성은 총리실이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 총리는 8일 기자간담회에서 총선 이후 노사가 참여하는 ‘목요 대화’를 통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합의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고용부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본적으로 경사노위가 공개 틀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갈 것인지,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 외의 틀에서 사회적 대화’를 고집하는 것은 올해 경사노위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안이 부결된 후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참여 안건을 대의원대회에 다시 상정하지 못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김명환 위원장 집행부에서 한번 부결된 안건을 다시 대의원대회에 올리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김 위원장의 임기가 올해 12월 종료된다. 민주노총은 오는 29일 개최하는 임시 중앙위원회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 보궐 선출 건을 다룬다. 12월 선거를 앞두고 8월부터는 이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해지기 때문에 경사노위 참가와 같은 큰 안건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 노사정위에 참여했다가 정리해고제·파견제 도입 등을 받아들여 ‘정부의 거수기 노릇만 했다’는 비판 여론이 민주노총 내에서 여전히 팽배해 있기도 하다. 전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는 대의원 대회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 배경이다.
재계에서도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 만큼 대화 테이블이 열리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상의 관계자는 “합의가 될지는 별개로 두더라도 사회적 대화를 경제계에서 부정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번 ‘원포인트 대화체’가 경사노위 참여를 위한 주춧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번 사회적 대화의 결과에 따라 대의원들의 경사노위에 대한 시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별도의 사회적 대화 틀이 출범해 실제 성과를 이뤄낼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우선 한국노총이 기존의 경사노위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당장 지난달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노사정 타협을 경사노위에서 이룬 후 후속조치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경사노위를 우회해 사회적 대화를 진행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대화 파트너인 재계를 상대로 적대적인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도 문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이날 서울 경총회관 앞에서 노동시장 유연화 제고·법인세 인하 등을 요구한 경총을 규탄하며 ‘경총 해체 요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재계 관계자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회적 대화를 이야기한 바로 다음주 산별 노조가 경총 해체를 외치는 것은 민주노총 내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증거”라며 “민주노총까지 포함한 사회적 대화의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정부·여당의 책임이 더욱 중요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세종=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