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화가’라 불리는 박수근은 한국전쟁 시기 미군PX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계를 이었다. 1960년대에는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반도호텔 안쪽의 반도화랑이 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그의 그림을 팔았다. 박수근은 일주일에 두세 번 씩 화랑에 들러 ‘오늘은 그림이 좀 팔렸나’를 묻곤 했는데, 해사한 얼굴로 그를 맞으며 항상 따뜻한 커피를 내주던 젊은 갤러리스트가 훗날 현대화랑을 창업한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이다. 일본 유학파에 밀리고 미술대학 파벌에 치여 파묻힐 뻔한 박수근의 진가를 알아보고 1970년 유작 소품전을 시작으로 1985년 대규모 박수근20주기 회고전을 연 곳이 바로 현대화랑이다.
천재로 태어났으나 불운한 삶 속에 요절한 이중섭이 재평가된 계기를 마련한 곳 또한 현대화랑이었다. 1972년 열린 이중섭 회고전은 곳곳에 흩어져 행방조차 알 수 없던 이중섭의 주요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보여준 첫 전시였다. 작품을 보려는 관람 대기줄이 연일 길게 늘어섰고, 화랑은 이중섭의 대표작 ‘부부’를 구입해 국립현대미술관에 쾌척했다. 1999년에 개최한 이중섭 전시는 9만여 명이 다녀가 당시 국내 갤러리 전시 최다 관객 수를 기록했다. 일찍이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이중섭의 은지화를 구입했는데, 이들 작품은 2015년 현대화랑 전시를 통해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박수근·이중섭을 비롯해 권옥연,도상봉,박고석,오지호,윤중식,이대원,장욱진,최영림 등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현대화랑의 개관 50주년 특별전 ‘현대50’을 맞아서다. 40여 작가의 70여 작품을 선보인 전시 자체가 한국 근대미술사의 압축판이라 할 만하다. 지난 1970년 문 연 현대화랑은 당시로는 드물게 독립된 전시장을 갖췄고 동양화 위주이던 화단에서 서양화를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명동화랑·반도화랑 등의 근대기 화랑의 빈자리를 채워줬기에 화가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였다.
지금은 ‘단색화’로 불리며 세계 무대에서도 주목을 끌지만 구상미술이 주류이던 1970년대만 해도 거들떠보는 사람 없던 한국의 추상미술을 묵묵히 지원한 것 또한 현대화랑이다. 남관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김창열의 ‘물방울’ 연작과 이응노의 문자추상을 전시했다. ‘묘법’으로 유명한 박서보는 “1982년 갤러리현대 전시 때 연필 묘법 100호가 300만원에도 안 팔렸는데 2015년 한 경매에서 15억원에 팔리더라”고 인터뷰를 통해 회고했다.
국내 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지닌 김환기도 갤러리현대와 끈끈한 인연을 맺었다. 뉴욕에서 활동하다 타계한 김환기의 추상미술은 1970년대 한국에서는 생소했다. 하지만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은 1977년과 82년의 김환기 회고전을 비롯해 15주기, 25주기 전시를 열었고 2013년 김환기 탄생 100주년 전시 등을 통해 작가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볼 기회를 마련했다. 지난해 11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된 ‘우주 05-IV-71 #200’도 전시장에 나왔다. 지난 2012년 같은 곳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전 이후 8년 만이다.
독일과 미국에서 활동하던 백남준을 한국에 알린 것도 갤러리현대였다. 백남준의 전속화랑으로 그의 활동을 지원한 갤러리현대는 1988년 개인전을 통해 ‘로봇 가족’ 연작을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1990년 7월에는 백남준의 친구이자 개념미술가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굿 형식의 퍼포먼스 ‘늑대 걸음으로’가 갤러리 뒷마당에서 열렸다. 지난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게 한 대형 TV조각 ‘마르코 폴로’가 전시됐다.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변관식·도상봉·박서보·천경자·오지호·정상화·이성자·권영우·이우환·유영국·박수근·이중섭·김기창·김창열· 백남준 등을 심도있게 소개하는 온라인 전시가 우선 공개되고 오는 5월 12일 일반 대상의 전시가 개막한다. 1부는 5월31일까지, 2부는 6월12일부터 7월19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