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단독]EU, 수입철강 세이프가드 강화....韓기업들 “中 저가공세도 버거운데”

EU, 자동차 신규등록대수 55%나 급감

자국산업 경영난에 수입물량 제동 나서

여타 국가들도 상응 보호조치할 가능성

EU집행위원회가 수용할지는 미지수

전남 광양시의 한 제철소 제품 출하장에서 직원들이 화물기차에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 유럽철강협회가 유럽연합(EU)에 수입되는 철강 물량을 줄이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국내 철강 업계의 고민이 깊다. /광양=연합뉴스전남 광양시의 한 제철소 제품 출하장에서 직원들이 화물기차에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 유럽철강협회가 유럽연합(EU)에 수입되는 철강 물량을 줄이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국내 철강 업계의 고민이 깊다. /광양=연합뉴스



유럽철강협회가 수입물량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역내 철강 업계의 피해가 급속히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발(發) 공급과잉에 시달리는 가운데 자동차 등 전방 산업 수요까지 급감하자 철강업의 심장인 고로(용광로)까지 멈춰 세우는 판이다. 만에 하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장벽을 쌓으면 우회물량을 막기 위해 다른 나라들도 잇달아 보호무역 조치를 꺼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산업 수요 반등이 요원한 만큼 철강 산업뿐 아니라 다른 업종에서도 보호무역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21일(현지시간) 유럽 자동차생산회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자동차 신규 등록 대수는 56만7,308대로 전년 대비 55% 감소했다. RBC캐피털마켓의 분석을 보면 올해 글로벌 자동차 생산량은 전년 대비 16%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해외 역외 사정도 다르지 않다. 전체 철강재 생산량의 30%를 소비하는 자동차 수요가 쪼그라들자 EU 철강 업체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이에 역내 주요 철강 업체들은 잇달아 감산에 나서고 있다. 세계 최대의 철강 업체인 아르셀로미탈은 최근 이탈리아 타란토제철소의 생산능력을 25% 축소하기로 했다. 프랑스와 스페인 공장에서도 고로 가동을 무기한 중단하거나 생산량을 줄이기로 했다.


쇳물을 만드는 고로에 불이 꺼지면 원재료인 광석은 그대로 굳는다. 재가동하는 데 적게 잡아도 2개월이 걸리는 탓에 재고를 쌓아두더라도 고로를 멈추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가동을 멈춘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방증이다. 쿼터를 75%까지 낮춰달라는 EU 철강협회의 요청은 벼랑 끝 호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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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집행위가 업계의 이 같은 요청을 전적으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유럽 내 다른 산업군들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일방적인 결정은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19의 직격탄으로 업황이 얼어붙은 자동차·조선 산업 등이 원자재 공급 차질까지 겪으면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실제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유럽철강협회의 이 같은 요청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내 철강 업계의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75%라는 극단적 수준은 아닐지라도 일정 부분 쿼터를 줄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세이프가드 강화 조치가 현실화하면 대형 업체들의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EU에 수출하는 철강제품의 90%가량은 판재류다. 선박·자동차 등에 쓰이는 판재류는 고로를 보유한 대기업들의 주력 품목이다. 이미 국내 철강 업계는 연이은 대내외 악재로 코너에 몰린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수요 산업의 부진이 심화하고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리고 있다. 이미 포스코·현대제철 등 주요 업체들은 생산량 재조정을 고려하는 실정이다.

한쪽에서 보호무역주의의 불을 지피기 시작하면 도미노처럼 보호무역주의가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업계의 시름을 깊게 한다. 무역장벽에 막힌 물량이 자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방어 수단을 꺼내 들 것이라는 우려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애당초 EU가 철강 산업을 보호한다며 세이프가드를 꺼낸 것도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로 수입을 제한하면서 시작된 일”이라며 “수요가 언제 반등할지 기약조차 할 수 없으니 ‘일단 막고 보자’는 식의 무역조치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에 치러질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무역장벽을 높여나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보호무역 조치를 통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기조”라며 “코로나19가 잦아들더라도 침체된 수요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보호무역 조치를 강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세종=김우보기자 한동희기자 ubo@sedaily.com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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