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시그널] 국내사 신용등급 하향…금융위기때 보다 빨라

무디스 등 2년간 29곳 조정했는데

코로나에 석달새 벌써 45곳 하향

실적 발표 후 무더기 조정 가능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한 지난 1월 하순 이후 3개월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나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가 신용등급을 ‘하향 판단’한 국내 기업 수가 45곳에 달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던 2007~2008년의 29곳에 비해 2배 가까이 많다. 엄격한 판단으로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준다는 취지지만 자칫 자금조달 차질의 빌미도 제공할 수 있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욱이 강등 건수는 1월부터 매달 늘어 기업실적 발표가 끝나는 오는 5월 이후에는 무더기 조정될 가능성도 높다. ★관련기사 5면

2415A01 S&P·무디스 신용등급 하향 내역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P·무디스는 1월 하순 이후 국내 기업들에 대한 신용도 재평가 작업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1월에는 2건에 불과했지만 2월 11건으로 늘었고 3월 15건, 4월22일 현재 17건에 이르렀다. 예봉은 LG화학이나 현대·기아자동차 등도 피하지 못했다. 무디스는 LG화학의 신용등급을 A3→Baa1으로 낮췄고 현대차 등은 하향 검토에 포함됐다. 중견기업의 한 재무담당 임원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 글로벌신평사는 저승사자와 같다”면서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기업의 재무담당은 “2007~2008년 2년간 신용재평가가 이뤄진 국내 기업이 채 30곳이 안 됐던 데 비하면 과하다”면서 “초우량기업을 빼고는 칼날을 피할 기업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3개월간 45곳이 신용조정 대상이 됐는데 위기가 1년을 더 간다면 180개 기업이 도마 위에 오른다는 계산이 나온다”면서 “이런 추세라면 신용등급발 위기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실적 발표가 끝나는 5월, 그리고 코로나19의 실물타격이 본격화하는 2·4분기 이후에는 ‘무더기 강등→자금조달 실패→흑자도산’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신평사들의 부실평가가 위기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면서 “결국 정부가 기업설명회(IR) 담당자라는 각오로 지원방안에 대한 설명과 압박 카드를 다 써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2건→11건→15건→17건 ‘무더기 신용 강등’

글로벌 신평사위기 조장이냐, 탄광 속 카나리아냐

부정전망 넘어 하향 검토도 급증

연쇄 하락 땐 신규 자금조달 타격


“정책·코로나 진정 고려해야”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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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이사회는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데븐 샤마 대표를 전격 교체했다. 샤마 대표는 당시 미국의 충격적인 신용등급 하락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월가에서는 “버락 오바마 정부가 S&P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자 회사가 결국 백기를 든 것”이라는 해석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다른 국가보다 기업 자유를 더 존중하는 미국에서조차 신용등급 강등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예민한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하물며 기업에 대한 신용등급 강등은 보다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단기 유동성이 말라 기업들이 흑자도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금융당국도 국내 신용평가 3사에 “기업 신용등급 조정에 신중을 기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작과 같은 위기 때는 저승사자의 역할에만 집중하지 말라는 얘기다.

국내 신평사는 그래도 정부의 입김이 닿는다. 하지만 글로벌 신평사는 다르다. 잣대가 냉혹하다. S&P와 무디스의 1월 하순 이후 3개월간의 등급 조정 건수가 2007~2008년 때보다 월등히 많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국내 기업에 대한 등급 조정은 △하향 7건 △전망조정 17건 △하향검토 2건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미 하향건수가 8건이고 △등급전망 변경 14건 △하향검토 23건에 달한다. 현대차·SK이노베이션·LG화학·KCC·미래에셋대우 등 국내 대표기업들이 모두 하향 대상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대거 낮아질 위기에 몰리면서 해외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외화채권 스프레드는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포스코의 5년물 달러화채권과 미국 5년물 국채 간 금리 격차는 지난해 7월12일 1.07%포인트였지만 지난 22일 현재 2.1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포스코 채권을 그만큼 싼 가격에 시장에 던지겠다는 해외 투자자들이 늘었다는 의미다. 국내 기업들에 대한 연쇄 신용등급 강등이 이뤄지면 투매 현상이 일어 신규 자금조달이 아예 막히는 현상까지 빚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신평사들의 평가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의 지원대책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 개발 등 경기 호전의 가능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내의 한 기관투자가는 “신용평가는 기본적으로 현재 기업의 재무상황과 향후 전망을 고려해 이뤄지는 것”이라며 “글로벌 신평사들이 (단기에 어려워진) 기업들의 현금 상황에 과도하게 집중해 정부 대책 등을 고려한 전망을 보수적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국내 기업의 기업설명회(IR) 대변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글로벌 신평사들의 행보를 ‘탄광 속 카나리아’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채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대표적 기업인 현대차 등급이 하향검토되고 있지만 포드 등 다른 글로벌 기업은 아예 신용등급이 하향됐다”며 “기업과 정부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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