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간 엇박자 속에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치권이 총선용으로 덜컥 ‘재난지원금 100% 지급’ 공약을 내걸었지만 정작 재정당국인 기획재정부가 ‘소득 하위 70%’ 기준을 고수하면서 스텝이 꼬여버렸다. 23일에는 급기야 국무총리가 “(내가) 정부를 대표해 공식 입장을 냈음에도 일부 기재부 공직자들이 뒷말을 한다”며 기재부를 공개적으로 질책하는 듯한 모습까지 연출됐다. 청와대의 중재로 재난지원금을 100% 지급하되 고소득자에 대해서는 그 돈을 기부받는 형태로 환수해 재정 부담을 줄인다는 방침이지만 이를 놓고도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자발적 기부를 전제로 한 긴급재난지원금의 문제점을 들여다본다.
“기부받아 국가 재정 운용하나”
먼저 국가 재정 운용의 불확실성이다. 정부 여당은 재난지원금을 일단 모든 가구에 100% 지급하되 사회지도층·고소득자로부터는 지원금을 국가가 기부받아 재정 부담을 던다는 구상이다. ‘자발적 지원금 수령 거부’를 국가에 지원금을 기부한 것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해 기부금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세제 혜택을 통해 자발적 수령 거부를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발적 기부’ ‘시민의식’에 기댄 재정 운용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지원금 수령을 거부할지, 이에 따라 얼마가 세액공제로 지출돼야 할지 예측이 힘들기 때문이다. 가계로 치면 한 해 얼마를 벌지 알아야 씀씀이를 조절할 텐데, 수입을 가늠할 수 없으니 깜깜이 살림이 되는 셈이다.
여당 스스로도 “재정 부담을 줄이는 방안은 우리(여당)가 만드는 게 아니고 높은 시민의식에 기대는 것”이라며 “재난지원금을 기부하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몰라 재정 부담을 시뮬레이션하기 어렵다(박찬대 원내대변인)”고 밝혔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가 재정을 이런 식의 모험주의에 의존해 운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꼬집었다.
세법상 기부에 대한 새로운 개념 필요한데
당정의 구상대로 자발적 지원금 수령 거부를 독려하기 위해 지원금 반납에 세액공제 혜택(15%)을 주려면 세법상 기부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
기부금의 세법상 개념은 ‘사업적으로 관계없이 무상으로 지출하는 증여의 가액’이다. 돈(또는 물품)이 직접 상대방에 건네지는 개념이다. 당정은 ‘수령을 거부한 지원금’을 기부한 것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세법상 기부금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실제 받지도 않았고 국가에 건네지도 않은 돈을 기부했다고 치는 셈이기 때문이다. 김재원 미래통합당 정책위의장이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나라에서 지원금을 준다는데 ‘저는 안 받겠다’ 했다고 해서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은 현재 세법 체계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이유다.
한 세제 전문가는 “세법을 고칠 필요까지는 없을 수 있겠지만, 법상 기부의 개념에 대한 해석을 기존과 달리해야 하는 점은 있다”고 말했다.
소득 없는 사람은? 공제 어려워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기부금 세액공제 혜택은 기본적으로 근로소득자나 사업소득자에 해당한다. 소득이 없는 은퇴자의 경우 재난지원금 수령을 거부해도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예컨대 고소득자가 지원금 수령을 거부하고 이를 기부할 경우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는 은퇴자는 수령을 거부해도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공제 혜택으로 자발적 기부를 유도한다’는 구상이 소득이 있는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 간 형평성 차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의권’ 쥔 기재부 팔 비튼 與
무엇보다 재정당국인 기재부를 사실상 굴종시키다시피 하면서 정치적으로 추진되는 재난지원금 100% 지급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다. 기재부는 애초 향후 경기 대응에 필요한 재정 여력을 비축한다는 차원에서 ‘소득 하위 50%’ 기준을 제시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여당의 기세에 밀려 70%까지 넓혀졌고, 급기야 100%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차 추가경정예산안이 소득 하위 70%를 기준으로 짜여진 만큼 100% 지급을 위해서는 예산 증액이 필요하고, 이는 헌법상 정부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때문에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정부 권한이 ‘자발적 기부’라는 꼼수에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