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금융계의 글로벌 빅샷(거물)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산업 재편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발맞춘 변화들에 적응하지 못하면 기업들이 생존의 기로에 설 것으로 예상돼 사업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안을 활발하게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세계 경제를 구해낸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코로나19 사태의 늪에서 많은 중소기업이 회복하지 못할 경우 “소수의 기업들로 산업 구조가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코로나19로 최대 타격을 입은 여행 산업의 경우 다른 산업군에 비해 정상 궤도에 복귀할 때까지 오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다시 시작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기 전에는 경제가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이번 사태는 단순히 금융시장과 성장률에만 압박을 가한 것이 아니라 ‘적시 공급망(just-in-time supply chains)’이나 항공 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기본 가정과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할 것”이라며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며 투자자는 물론 기업과 소비행태도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급변한 대내외 환경이 계속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지적은 국내에서도 나왔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최근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며 “변화에 발맞춰 디지털을 활용한 비대면 영업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새로운 경제 모델로 주목받아온 공유경제 업계도 코로나19로 예상치 않은 큰 타격을 입으면서 그간의 성장 궤도를 수정하며 구조조정에 나서야 할 처지에 놓였다. 아시아 최대 승차공유 플랫폼인 그랩의 앤서니 탄 CEO는 “코로나19라는 폭풍을 이겨내고 수익성을 개선하려면 비용 절감이 필수적”이라며 “사업에 미친 영향을 계속 평가하면서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동일 산업 내 기업들의 옥석을 가려주며 생사를 가를 것이라는 관측에도 힘이 실린다. 칩 버그 리바이스 CEO는 “코로나19 이후 유통업계에서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갈라질 것”이라며 “살아남는 기업은 소비자와 더욱 깊게 교감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도 “강력한 브랜드를 가진 기업일수록 더 빠르게 회복하고 지배력을 공고히 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4차 산업혁명 물결과 함께 급성장해온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영향력도 더욱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슈밋 전 회장은 “코로나19 이후 빅테크 기업들이 막대한 수익을 거머쥘 것”이라며 “이 같은 쏠림세 속에서도 성장성 있는 중소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으며 투자도 쉽게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수요가 폭증한 화상회의 서비스 업체 ‘줌(Zoom)’을 예로 들었다.
슈밋 전 회장은 각국 정부가 디지털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뉴딜’급 투자에 나설 것도 강하게 주문했다. 그는 “디지털 인프라를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5세대(5G) 네트워크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