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공히 전 가구(국민) 지급을 내걸었던 긴급재난지원금이 시간이 갈수록 무리수 정책이 되고 있다. 사회지도층·고소득자에 대한 ‘자발적 기부’를 유도하고 여기에 세제혜택을 주겠다는 발상은 물론 기부 방식과 활용을 둘러싼 갈등도 점입가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정정책 전문가는 “정치권이 100% 지급 약속을 억지로 지키려 하다 보니 별의별 희한한 정책이 다 나온다”며 혀를 내둘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생업에 타격을 받은 저소득층을 지원하고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한 재난지원금 지급의 취지는 퇴색된 채 ‘100% 지급’ 자체가 목적이 돼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100% 지급을 위해 국민 편 가르기에 기댔다는 점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재난지원금은 표면적으로만 100% 지급일 뿐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자발적 기부’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의존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재난지원금 수령 자발적 거부 방식을 예시로 설명하면서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받았다면 누구는 이 중 50만원, 또 다른 누구는 (금액을 더 얹어) 200만원을 기부하는 방법도 열어둘 수 있다”고 말했다. 재난지원금을 받은 만큼만 나라에 되돌려주는 게 아니라 이보다 덜, 혹은 더 많이 ‘기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럴 경우 ‘기부를 했느냐’를 너머 ‘얼마를 기부했느냐’는 식의 분위기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
벌써부터 공직사회에서는 “대통령이나 장·차관이 본인이 받은 재난지원금보다 더 많이 기부한다면 그 아래 공직자들은 눈치를 안 볼 수 있겠느냐”는 푸념이 나온다. 실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장·차관들이 급여 30%를 반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주요 공기업 기관장과 임원들은 경쟁하듯 반납 대열에 동참했다.
기부로 모인 재원 용도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정부는 국민 기부금을 고용보험기금으로 전입해 고용 유지와 실직자 지원 관련 예산으로 쓰겠다고 했다. 고용보험기금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현 정부 들어 추진된 최저임금 급등과 주 52시간제 시행 등으로 이미 바닥이 드러났다. 지난해 고용보험기금은 2조원 적자를 냈다. 정책 실패로 고갈된 고용보험기금을 국민 기부금으로 메운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