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A-’인 대한제당(001790)은 지난 27일 4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겨우 한도를 채웠다. 같은 날 동아쏘시오홀딩스(000640)도 450억원 모집에 56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는 데 그쳤다. 미매각 물량이 발생할 뻔했지만 산업은행이 구원투수로 등판해 절반 가까운 물량을 인수하면서 가까스로 시장 수요 확보에 성공한 것이다.
A급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시작됐지만 시장의 투심은 여전히 냉랭하다. 유동성이 시급한 기업들은 결국 발행량을 줄이고 산업은행에 도움을 요청해 수요를 확보하고 있다.
IB 업계의 관계자는 28일 “A급 회사채도 산은이 없으면 발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산은이 절반에 가까운 물량을 인수해주면 나머지 물량은 증권사 리테일 등에 세일즈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살얼음판 위에 있다”고 현재의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도 그렇다. A급 회사채는 채권안정펀드의 매입대상이 되지 않아 발행이 쉽지 않자 산은이 구원투수 역할을 하고 있다. 산은은 이달 초부터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을 통해 차환 목적으로 발행하는 기업들의 채권을 직접 인수하고 있다. 400억원 규모로 모집한 대한제당에는 200억원어치를 매입했다. 450억원을 발행하는 동아쏘시오홀딩스에도 180억원어치 주문을 넣었다. 나머지 물량은 연기금·운용사 등 일반적인 회사채 투자자들이 아니라 증권사 리테일로 팔려나갔다. 이날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은 동아쏘시오홀딩스에 투자한 산림조합중앙회 이외 없었다.
풍산(103140)도 상황은 비슷했다. 500억원 발행에 산은이 200억원어치를 매입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증권사들에 팔려나갔다. 산은의 지원을 받지 못한 롯데손해보험(000400)의 후순위채는 900억원 모집에 600억원의 자금을 모으는 데 그쳤다. 회사채 매입을 산은의 기업금융부서에서 담당하는 만큼 금융사가 발행하는 상각형조건부자본증권(후순위채·신종자본증권 등)은 매입 대상이 아니다.
IB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산은 투자담당팀장 전결로 투자 가능한 규모는 200억원인 것으로 전해지는데, 기업들이 발행액수를 500억원 안팎으로 잡는 이유”라고 말했다. 신규 발행되는 A급 회사채들이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소화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산은은 첫 매입을 시작한 롯데푸드부터 100억~200억원 규모로 투자를 이어왔다. 심지어 다음달 6일 수요예측을 진행하는 한일홀딩스(A)에는 주관사단으로 참여해 시장 경색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방침이다.
발행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유통시장에서의 A급 회사채 금리스프레드는 높다. SK디스커버리(006120)(A0) 190회 회사채는 민평 대비 36.8bp(1bp=0.01%p·27일 거래) 가산된 금리를 적용했다. 효성화학(A+)의 257회 회사채도 29.4bp 높은 수준에서 거래됐다. 반면 이날 AA등급 회사채의 금리스프레드는 -1.2~13.2bp 수준에 그쳤다.
다만 정부의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 계획에 힘입어 시장의 기대감은 여전한 분위기다. 정부는 지난주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신보 P-CBO 5조원 확대 △산업은행 SPV 20조원 결성해 저신용 회사채·기업어음(CP)·단기사채 매입 △7대 기간산업 지원 40조원 등 지원 방안을 내놨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리를 높여도 투자수요의 싹이 말랐던 지난달과 비교하면 시장이 많이 완화된 편”이라며 “우량등급만 담기에는 투자 풀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다음달부터는 A급 사채까지 온기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