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가상 사무실로 창업하는 일본인들

[라이프점프] 송주희의 똑똑! 일본(2)





법인 등기에 필수인 주소 제공해주는 서비스 인기



요즘 자신의 취미나 장기를 살려 1인 창업을 하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본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특히 최근 정부가 직장인들의 ‘부업·겸업’을 장려하고 나서면서 창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요. 소규모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이 ‘비즈니스 모델’ 이후 맞닥뜨리는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사무실이 아닐까요. 사무실을 임대하기에는 부담이 크고, 그렇다고 집 주소를 사업 주소로 노출하는 것도 불안할테지요.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소규모 창업자들의 이 같은 고민을 해소하는 서비스로 ‘가상 오피스’가 일본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조산사 출신의 A(47·여)씨는 3년 전 육아 지원 세미나를 개최하는 일반 사단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법인 설립에 있어 ‘주소’는 등기에도, 법인의 정관을 만드는 데도 반드시 기재해야 하는데요. A씨는 사무소로 집 주소를 공개하는 것은 개인정보 노출의 위험 때문에 마뜩잖았습니다. 그렇다고 사무실을 빌리는 것 역시 비용 부담이 커 고민이 많았습니다. A씨가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바로 가상 오피스였습니다.

전화·우편물, 개인 번호·주소로 받을 수 있어 편리



가상 오피스는 회사의 주소와 전용 전화번호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법인의 소재지로 등기가 가능합니다. 여기서 잠깐! 한 건물에서 여러 회사가 사무실을 공유하는 ‘쉐어 오피스’를 떠올리는 분들이 계실텐데요. 가상 오피스는 쉐어 오피스와는 조금 다릅니다. 가상 오피스의 기본 서비스에는 업무 공간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택이든 집 근처 카페든 회사의 사무실은 별도의 공간이고, 대외적인 법인 주소지만 제공되는 구조입니다. 고객과 만날 때 필요한 미팅 공간은 가상 오피스의 대회의실을 빌리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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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주소와 전용 전화번호를 이용하는 서비스로 월 8,900엔을 내고 있습니다. 가상 오피스에서 빌린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A씨의 휴대 전화로 전송되고, 우편물 역시 같은 방식으로 A씨에게 전달됩니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겠죠. 가상 오피스는 고객과의 만남이 빈번하거나 재고 보관 장소가 필요한 사업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또 가상 오피스 주소로는 인재 소개업 같이 인허가가 필요한 회사의 창업이 인정되지 않고, 금융기관에 법인명으로 계좌를 개설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정부 ‘부업·겸업 장려’ 속 50·60대 중심 이용 급증

가상 오피스 서비스 이용사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MOOR사에 따르면, 서비스를 시작한 2010년 57개사였던 이용사가 2018년에는 6,000개사로 늘어났습니다. 서비스 이용자의 주 연령대는 50~60대고, 남녀 비율이 7대 3정도라고 합니다. 정년 후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창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인데요. 특히 일본 정부가 최근 취업 규칙을 바꿔 직장인들의 부업·겸업을 장려하고 나서면서 관련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총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겸업·부업 인구는 2007년 약 102만명에서 2017년 128만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극심한 노동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은 ‘일하는 방식 개혁’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노동시간 단축(잔업 축소), 육아휴직 활성화 등을 통해 비효율적인 업무 문화를 없애고 누수되는 노동력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인데요. 부업·겸업 허용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 물론 부업·겸업 같은 ‘N잡(job) 시대’가 장밋빛 일색인 것은 아닙니다.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본래 취지가 흐려지고, 기존 본업에서의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급여 양극화가 오히려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루하루 생활비를 벌기 위해 N잡을 뛰어야 하는 사람과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향상시키기 위해 N잡을 선택하는 사람의 상황이 다르다는 이야기겠죠. 그러나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회사에게도, 근로자에게도 부담이 되어버린 요즘, 부업·겸업과 같은 ‘한 우물 옆의 딴(다른) 우물’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딴 우물’의 진입 문턱을 낮춰주는, ‘가상 오피스’ 같은 아이디어가 새로운 사업 모델로 부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겠지요.

/송주희 서울경제 기자

송주희 서울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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