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여는 수요일] 소화기

- 박동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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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찾아가 먼지라도 털어주자

할머니는 다급하면 며느리를 찾았고


아버지는 여차하면 여보를 불렀고

아이들은 궁하면 엄마를 불렀지

푸르든 그 마음 붉게 물들이고

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급한 불이 없는지

찾는 손길 없어진 지 오래

먼지를 하얗게 덮어쓰고 앉아

먼 산 바라보며 한숨지으시는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

뒷전으로 밀려나

툇마루에 앉아 콩을 고르다

돌아가신 어머니

지금도 찾는다

발등에 불 떨어지면

아이고, 어메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한다. 유대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다. 어머니는 인간의 고민과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신의 대리인인 셈이다. 철이 덜 든 아이들 궁해서 부르는 거야 그렇다 치자. 고초 당초보다 맵던 시어머니야 힘 빠져서 그렇다 치자. 여차하면 부르는 저이, 별도 달도 따준다던 남편 아니던가. 저지레와 심부름과 뒷수발로 쉴 날 없는 엄마·여보·며느리. 발등에 불 끄느라 부르지만, 누가 소화기 끌어안고 뭉클한 눈물 머금겠는가.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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