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증시가 급락하자 자사주를 매입하는 상장사들이 급증했다. 자사주를 취득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금이 보유한 현금보다 많은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기업들이 앞으로의 경제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설비 등 유형자산에 투자하는 대신 합법적인 현금운용 방식으로 자사주 매입에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5일 서울경제가 한국거래소 공시 데이터와 에프앤가이드의 재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들어 현재까지 국내 상장사들은 181건의 자기주식 직접 취득 공시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33건)보다 5.5배 늘어난 규모다. 직접 취득이 아닌 신탁계약까지 포함하더라도 올해 49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0건)보다 5배가량 늘었다.
금액 기준으로는 올해 기업들이 공시한 자사주 매입 금액은 757억8,900만원으로 지난해 동기(386억7,000만원)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다 보니 보유한 현금(현금성 자산 포함)보다 자사주 직접 취득에 더 많은 돈을 할애하는 상장사도 속출했다. 코스닥에 상장한 운송업체 삼일은 지난 3월 총 9억9,000만원어치 자사주를 직접 매입하겠다고 공시했다. 이 회사가 지난해 말 기준 보유하고 있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776만원의 128배에 달하는 액수다. HDC아이콘트롤스는 보유 현금의 119%에 달하는 99억5,200만원을 자사주 취득에 쓰겠다고 공시했으며 KG ETS도 전체 현금 중 91.8%인 20억원만큼 자사주를 직접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1월부터 5월4일까지 자사주를 직접 매입한 상장사들은 평균적으로 보유 현금의 24.66%만큼 자사주를 취득하겠다고 공시했는데 올해는 이 비율이 91.73%에 달하고 있다. 물론 보유 현금보다 자사주 매입 금액이 많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상법상에는 배당가능이익 안에서 자사주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익잉여금이 341억원인 삼일의 경우 공시대로 9억9,000만원을 자사주 취득에 쓰는 데에 문제는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보유 현금 대비 자사주 취득액이 늘어나는 것은 기업경영 측면에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 자사주 매입이 늘어나는 것은 코로나19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설비 등 유형 자산에 투자하기보다 자사주를 늘려 기업 지배력을 높이고 주가를 부양하려는 의도가 강하다는 지적이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확대 등 장기적인 의사결정을 할 만큼 경기 상황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단기적으로 합리적인 현금운용 수단인 자사주 취득에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는 각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지만 경제 전체로 보면 그만큼 미래 전망이 어둡다는 방증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