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5월 13일 이집트 카이로, 모세 기념교회로도 알려진 벤 에스라 시나고그(유대교 회당).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발굴단이 창고에서 대량의 고문서를 찾아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대형 문서고(게니자·Geniza)에서 발견한 문건은 약 40만 개. 가치를 지닌 문건은 약 1만 개라는 당시 평가와 달리 오늘날까지 해독과 번역 작업이 진행될 만큼 엄청난 분량의 온갖 문서가 쏟아져 나왔다. 1946년 발견된 사해사본이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 필사본으로 인정받는 것도 이곳 게니자에서 나온 정황 기록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956년부터 1538년까지 작성된 문서가 대부분인 카이로 게니자는 어떻게 보존될 수 있었을까. 지배세력이 숱하게 바뀌는 동안 이슬람의 한복판인 카이로에서 약탈당하지 않은 이유가 뜻밖이다. 잊힌 덕분이라고. 망각으로 빨려 간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문서 보관서를 의미하는 ‘게니자’는 중세 히브리어로 ‘필요하지 않는 보관품’이라는 뜻도 있었다고 한다. 불필요한 문서를 보관한 아이러니는 유대 사회의 관습에 기인한다. 개인 간의 사적 편지든 가치 없는 문서든 ‘하나님(YHWH)’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서를 버리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금기로 여겼기에 ‘불필요한 보관창고’에 넣은 것이다.
문도 창문도 없는 큰 방의 외벽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가늘고 긴 구멍으로 집어넣은 문서들은 18세기 이후 유럽의 역사 탐구 열풍 덕에 세상에 나왔다. 독일 작가 겸 여행가 겔더렌(유대계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증조부뻘)이 1752년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 이래 수많은 학자와 탐험가들이 주변 탐색에 나섰다. 케임브리지대의 교수이자 랍비인 솔로몬 셰터 박사는 회당 보수 공사를 맡겠다고 제안해 게니자의 벽을 헐어낼 수 있었다. 카이로 게니자에서 나온 문서는 영국과 미국의 대학 도서관이 분산, 소장 중이다.
카이로 게니자에 만약 보물이 있었다면 보존될 수 있었을까. 건조한 기후와 ‘가치 없다’는 판단으로 잊힌 문건들이 천년 세월을 지나 진정한 보물로 평가받고 있는 현상에는 신의 오묘한 뜻이 담겼는지도 모르겠다. 경제사에서도 카이로 게니자는 연구대상이다. 관대했던 이집트 파티마 왕조 치하에서 유대인을 비롯한 상인 집단이 아프리카 북부와 유럽 전역, 인도에서 복식부기를 활용하며 장거리 무역활동을 펼쳤다는 사실이 규명되고 있다. 암흑기로 여기던 중세 말기에도 활발했던 국제 상업활동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과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위축되는 현실이라니.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