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




최영 장군은 나랏일에 사사로운 탐욕을 멀리하라며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만큼 오해받는 격언도 드물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고려 말 충신의 명언을 떠올리며 개인의 자산증식 욕구를 낯부끄럽고 민망한 물욕으로 치부하는 듯하다.

‘3저 호황’에 20%대 금리를 유지하던 지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자산관리는 곧 저축이었다. 적금만으로 충분히 자산을 모을 수 있는데 굳이 투자를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금융지식이 곧 투자에 대한 이해 수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저성장·저금리·고령화 시대에 투자를 모르는 삶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경제 상황이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자산관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은 우리 금융교육이 그만큼 부실하다는 증거다. 실제로 2018년 대한민국 성인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2.2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4.9점)보다 낮았다. 20대의 86% 이상이 평생 금융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금융교육은 단순히 개인의 자산증식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불법대출, 고위험상품 불완전판매는 늘 부족한 금융지식과 불안한 노후의 간극을 파고든다. 돈의 흐름과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의 구조를 아는 사람은 기형적인 고수익 금융상품에 열광하기에 앞서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금융과 투자의 개념을 폭넓게 이해하는 나라의 사회안전망은 그만큼 두터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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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관리와 투자를 터부시하는 문화가 곪아 터지면 ‘묻지마 투자’가 시장을 흔든다. 많은 이들이 근거 없는 한 방에 ‘올인’하는 분위기에 휩쓸리지만 투자를 꾸준히 공부해본 사람은 안다. 일상 속 자산관리는 화끈한 누아르 영화보다 잔잔한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대출의 무서움과 자기 책임의 원칙을 공부하면 절대 ‘묻고 더블로 가’거나 ‘이번 판에 내 돈 전부를 거는’ 행동은 할 수 없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금융교육을 제도화한 지 오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대통령 직속으로 금융교육자문위원회를 설치해 초등학교 때부터 소득과 지출, 금전관리와 신용, 금융투자를 가르친다. 영국의 경우 2014년부터 중고등학교 필수과정에 금융교육이 포함됐다. 돈의 흐름에 일찍부터 익숙해지고 평생 자산관리의 개념을 빨리 깨달을수록 슬기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청렴한 직무수행과 성실한 자산축적이 별개의 문제인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지만 황금의 가치와 돌의 효용은 전혀 다르다. 자산관리와 금융투자에 대한 관심은 헛된 욕망에 영혼을 팔아넘긴 누아르 영화 속 판타지가 아니다. 종잣돈을 불려가며 소소하게 미래의 희망을 그리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인 것이다. 꼼수 없이 성실하게 돈을 모으겠다는 사람에게는 손가락질보다 박수갈채가 어울린다. 변화된 시대 흐름에 맞게 금융교육이 일상화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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