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시그널] 지지부진한 아시아나항공 매각...불거지는 산은 책임론

금호산업 선행조건 미이행 이유로 계약 완료 무기한 연기

라임 투자 손실 등 '중대한 부정적 변화' 해당 가능성

현산 포기하면 금호그룹 부실 모두 산은이 떠안아야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에 진열된 모형 비행기. /연합뉴스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에 진열된 모형 비행기. /연합뉴스


아시아나항공(020560) 매각이 장기화하고 있다. 코로나19사태와 기업결합 심사 승인 지연이 표면적 이유이지만 일각에선 HDC현대산업개발(294870)이 계약 파기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명분 쌓기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더욱이 HDC현산 측은 매각 주체인 금호그룹 측이 ‘선행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못을 박은 상황. 공동 매각 주관사이자 주(主)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의 책임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HDC현산 측은 지난달 29일 당초 4월 30일이었던 아시아나항공의 구주 취득 예정 일자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공시했다.


사실 매각 연기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일단 코로나19 확산으로 아시아나를 비롯한 항공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미 HDC현산-미래에셋 컨소시엄도 당초 4월 7일로 예정했던 1조4,665억원 규모 1차 유상증자도 미룬바 있다. 신주 발행 납입일도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날로부터 10일이 경과한 날 또는 당사자들이 달리 합의하는 날’로 바꿨다. 당시만 하더라도 HDC현산 측은 세계 각국의 기업결함 심사가 늦어지면서 유상증자도 미루게 됐다는 설명을 내놨다.

‘선행조건’에 이목이 쏠린 것은 구주 취득 일자를 무기한 연기하면서부터다. 지난해 12월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당시 HDC현산이 금호산업이 보유한 지분 30.77%의 지분 취득을 위해 내건 요건은 모두 7가지다. 첫 번째는 금호산업이 주식매매계약서(SPA)로 약속한 사항(진술 및 보장)이 정확해야 한다. 두 번째는 조건은 계약에 따라 이행해야 하는 확약과 의무를 모두 이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밖에도 계약서엔 △거래를 제한하는 법령 제정이나 법원 판결 등의 존재 여부 △각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 △제1차 유상증자 완료 △HDC현산의 주주총회 승인 △6월 30일 이후 중대하게 부정적 영향이 발생했는지 여부 등이 조건으로 딸려 있다. 신주를 인수하는 데도 비슷한 내용의 조건들이 걸려 있다.





라임 통한 ‘셀프’ 자금조달 등 ‘중대한 부정적 변화’ 해당할까




HDC현산 측은 여전히 기업결합 심사를 이유로 꼽고 있지만 업계의 판단은 다르다. 지난해 12월 금호산업과 HDC현산이 주식매매계약(SPA)을 맺은 이후 ‘중대한 부정적 변화(MAC·Material Adverse Change)’가 발생했다는 게 중론. MAC은 인수합병 거래에서 불완전한 경영정보를 바탕으로 협상에 나서는 인수자 측이 자구책의 일환으로 계약서에 넣는 조항이다. 통상의 경우 발동 요건은 두 가지다. 우선 매도자 측의 과실이어야 하고, 또 손실액이 계약금액의 10%를 넘어야 한다. 구주 인수금액이 3,228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계약 파기를 가를 수 있는 손실액은 320억원 가량. 쉽게 말해 매각 진행 중 금호 측이 감춘 일 등으로 발생한 예상치 못했던 손실이 320억원 발생할 경우 HDC현산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명분을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다.



MAC으로 꼽히는 사례 중 하나가 아시아나항공의 ‘셀프(self)’ 자금조달 사건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3월 영구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 850억원 중에서 300억원을 상장 자회사 자금을 투입한 바 있다. 상장사의 모회사 신용 공여를 막고 있는 상법을 우회하기 위해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를 활용했다. (★본지 4월 6일자 5면) 해당 펀드는 이미 절반 넘게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기내식 부당지원행위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른 과징금 등의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이 지난해 3월 850억원 규모 영구채를 발행할 당시 에어부산과 아시아나IDT가 라임자산운용의 펀드를 통해 우회해 자금을 지원한 방식.아시아나항공이 지난해 3월 850억원 규모 영구채를 발행할 당시 에어부산과 아시아나IDT가 라임자산운용의 펀드를 통해 우회해 자금을 지원한 방식.


‘키’ 쥐고도 역할 못한 산은, 계약 무산 땐 금호그룹 떠안아야



산은 책임론이 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은은 지난해 4월 금호고속과 금호산업 등 아시아나항공 및 자회사를 제외한 잔여 계열회사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박삼구 회장과 합의한 바 있다. 이후 주채권은행으로 매각을 관리해온 상황인 만큼 매각 착수 이후 발생했던 사건의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상황. 또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이 무산될 경우 아시아나항공의 막대한 부실도 모두 떠안을 수밖에 없다. 2008년 한화그룹과 대우조선해야 매각 계약이 무산된 이후 천문학적인 정책자금을 투입했던 일이 재현될 수 있는 셈이다.

산은이 HDC현산의 행보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산은 등 채권단도 HDC현산이 계약을 파기하기 위해 명분을 찾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상황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DC현산 경영진도 부분 자본잠식에 빠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경우 배임 이슈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명분만 확보할 경우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해도 계약금(322억원)과 이행보증금(2,500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경영실적이 나빠진 상황이 계약을 무산시킬 수 있는 명분은 될 수 없다”며 “중대한 부정적 변화 등으로 인한 명분만 확보해 계약금 등을 돌려받고 인수를 포기하는 게 HDC현산 입장에선 가장 좋은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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