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사회적대화 첫 회의에서 ‘합의에 대한 세부 사항·이행 점검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해야 한다’ ‘사회적대화를 중간에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999년 경사노위의 전신인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한 민주노총이 진정성을 갖고 사회적대화를 하겠느냐는 한국노총의 회의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와 협상을 하기도 전에 양대 노총 간 신경전이 치열해지면서 과연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양대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 관계자는 15일 원포인트 사회적대화 2차 회의를 개최하고 본회의를 오는 20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총리실의 주도로 개최되므로 정세균 국무총리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손경식 경총 회장, 박용만 상의 회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이재갑 고용부 장관이 참석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본회의 전부터 신경전이 잇따르고 있다. 노사정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노총 측은 지난 13일 열린 실무회의에서 ‘원포인트 사회적대화’에서 합의를 도출하더라도 이행 점검은 경사노위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과 원포인트 사회적대화에 참여한 주체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해야 한다는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민주노총뿐 아니라 사용자단체 측에도 해당되는 말”이라며 “어렵게 사회적대화가 출범하는데 합의를 이뤄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지만 다분히 민주노총을 의식한 발언으로 분석된다. 경사노위가 세부적인 이행 사항을 담당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민주노총은 논의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사회적대화 테이블을 지키라’는 입장은 재계의 요구가 거세질 경우 민주노총이 산업별 노조의 입김에 밀릴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으로부터 공식적인 경로로 입장을 전달받지 않았다”며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지만 한국노총에 대한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김명환 위원장이 직접 한국노총에 ‘양해’를 구한다는 표현까지 썼다”며 “민주노총이 포함된 사회적대화체에서 이룬 합의의 이행을 경사노위에서 점검하겠다는 것은 우리를 배제하겠다는 것인데,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재계가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내놓기 전부터 양대 노총의 물밑 신경전이 격화하면서 노사정 안팎에서는 결국 합의를 이루지 못하거나 ‘맹탕 합의’에 그칠 것이라는 기류가 짙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 밖 노사정 대화체’를 제안하자 한국노총은 사무국을 중심으로 노사정 외 시민단체와 종교계까지 포함하는 ‘노사민정 협의체’를 추진했고 이 같은 갈등이 이어지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14일 경영발전자문위원회에서 “직무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과 탄력근로제·선택근로제 등 유연근로시간제도 확대가 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임금·근로시간 유연화를 요구할 계획임을 분명히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노동계가 요구하는 총고용유지는 경제침체 국면에서 재계가 받을 수 없을 것이고 임금·근로시간 유연화는 노동계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것”이라며 “세부적 합의에 이르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어렵게 구성한 사회적대화체인 만큼 선언적인 합의문만 도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올 3월 경사노위에서 발표한 노사정 합의 선언에는 △임단협 시기와 기간의 탄력적 조정 △사용자의 자가격리 중인 근로자 대상 생계 보호조치 제공이라는 내용이 들어갔지만 한국노총과 경총 측은 각각 “임단협 시기는 단위 노조에서 결정할 문제” “정부 정책에 협조하겠다는 원론적 의미”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구문을 애매하게 구성하고 노사가 각자의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여지를 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원론적 합의 후 세부 사항을 경사노위에서 추진하게 되면 민주노총의 반발은 또다시 불가피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