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어음(CP·91일물) 금리가 사흘 연속 떨어졌다. 단기채 조달 금리가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지만 시장은 “여전히 살얼음판 위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부터 미중 무역분쟁, 기업 재무구조 악화 등 금리를 흔들 악재가 산재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 보니 시장 투심의 바로미터인 회사채 스프레드는 10년 새 가장 높은 수준으로 벌어졌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15일 CP 금리(신용등급 A1 기준)는 1.95%로 마감했다. 지난달 2일 2.23%까지 올랐던 CP 금리는 지난 7일 1%대로 재진입했고 서서히 안정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연초 1.5~1.6% 수준에 비하면 여전히 높다.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채권 조달시장이 흔들리자 정부는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코로나19 피해대응 회사채 발행지원(P-CBO) 6조7,000억원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2조2,000억원 △산업은행 등을 통한 CP 등 단기자금시장 지원 계획 등 굵직한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단기시장금리는 치솟던 상승세를 멈췄을 뿐 유의미한 하락을 보이지 않고 있다. 3월에는 매일 17~22bp(1bp=0.01%포인트) 상승을 거듭하던 것과 달리 0~1bp 내리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단기금융시장은 기업들의 유동성 위기 현상이 가장 빨리 나타나는 곳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만기가 짧은 만큼 회사채 시장에서 발행이 어려운 저신용등급 기업들이 많이 찾기 때문이다. 과거 금융위기의 경우에도 위기의 전조는 대부분 단기자금시장에서 시작됐다. 단기성 자금으로 연명하다가 신용경색이 발생하면 부도가 발생하는 것이다.
시장은 아직 ‘공포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3월 쇼크가 갑작스럽게 온 만큼 언제 또다시 경색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 중소형 증권사 자금팀장은 “지급보증을 선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 ABCP) 물량이 많은 곳들은 흡수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며 “또 하나의 뇌관이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IB 업계 관계자도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지 않은 가운데 무역전쟁 등 글로벌 증시 변동성이 계속 커져 2차 쇼크에 대한 우려감이 큰 상태”라며 “가장 우량한 A1등급마저 투자 수요가 예전만 못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2·4분기 이후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불안감을 더한다. 최근 신용평가사들은 기업들의 신용등급 전망을 잇따라 조정하며 조만간 등급 하락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장기자금인 회사채시장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최근 우량등급 위주로 시장 수요가 일부 돌아오면서 긍정적인 조건으로 신규 발행되는 사례가 생기고 있지만 여전히 리스크가 큰 만큼 싸게 사려는 수요가 지배적이라는 평가다. 14일 기준 회사채 금리 스프레드(AA-급 기준)는 75.5bp까지 벌어졌다. 2010년 10월1일 76bp 이후 최고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