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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세이] 연극 '렁스' 혜화동과 삼선동 사이, 그 어딘가에서

사진=연극열전사진=연극열전



대학시절 딱히 공부를 한 기억은 없는데 딴에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친구들의 연애상담을 많이 했다. 이건 30대가 넘어서도 이어져 부부싸움을 할 때만 꼭 연락한다. 한참이나 혼자 말하다 여자 친구들은 “아 됐어, 너랑도 이야기하기 싫어”라며 전화를 끊고, 남자 친구들은 “야 조만간 술한잔 하자”며 서로 힘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본게 5년도 더 됐는데.

남녀는 다르다. ‘화성 남자 금성 여자’같은 말이 그냥 나왔을까. 남녀 사이는 늘 설탕과 소금, 물과 기름 같다가도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처럼 미묘한 것 아니겠나. 여자는 남자가 이해해주길 바라고, 남자는 여자가 말로 해주길 바란다. 극과 극의 지점에서 접점을 갖기 어렵지만, 그 어려운걸 또 찾아내는…. 연극 ‘렁스’는 이들의 사랑을 중심으로 좋은 사람과 환경문제와 같은 다양한 에피소드가 엮여있는 작품이다.


지구환경 박사과정인 여자와 음악을 하는 남자가 사랑한다. 남자는 아이를 갖기를 원하지만, 여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여자는 아이 하나가 발생시킬 탄소량을 계산하고, 남자는 만약 이 아이가 해답을 찾아서 모두를 구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세계 인구가 70억년이 넘고 인간이 포화상태인 이 지구의 한명의 사람을 늘리는 것은 올바른 선택일까. 대화에 이산화탄소, 탄소발자국, 홍수, 쓰나미, 우생학, 입양, 유전 등등등 온갖 문제들이 나온 뒤 여자는 말한다. 무섭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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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다 남자는. 이 복잡하고 거대한 세상에 아이 하나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친다는건가. 그는 음악 대신 취직을 하고 여자의 책을 읽는다. 네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린지 모르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가만히 있었다고 잠든 여자 뒤에서 읊조린다.


여자가 임신을 한 뒤 호르몬 변화로 심적 변화가 심해지면서 서로의 거리는 멀어지기 시작한다. 운동화를 신던 발에 구두를 신은 남자의 발처럼 임신과 함께 이들의 사회적 지위와 관계 모두 한번도 겪지 못한 감정으로 인한 갈등을 빚기 시작한다. 찰나의 행복이 지나고 다시 비극이 찾아오면서 이들은 그 간극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리고 인생은 이들을 또다른 운명의 소용돌이로 몰아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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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서로를 끊임없이 좋은 사람이라고 주입한다. 재활용은 하는데 비닐봉지를 쓰고, 천연비누 만들면서 샴푸를 쓰고, 전기차의 장점을 역설하고는 연비 따져 디젤차 사는 보통 사람들과 같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지만 결코 완성할 수 없는 모순, 이 딱히 좋아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객석의 누구와도 살짝은 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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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텅 빈 공간에 세워진 기다란 선 뿐이다. 길 위에 두 사람만 존재한다. 이들은 빈 공간의 서로에 말을 뿌리고, 웃음과 희망 행복 좌절 슬픔 재회 그리고 짧지만 긴 인생역정의 시간을 채워 공간을 메운다. 남자와 여자가 격정적 상황마다 벗어놓은 신발들은 마지막 조명이 켜졌을때 ‘함께 걸어온 길’로 완성된다. 암전 없이 시간의 흐름을 구현해내는, 그 긴 대사와 복잡한 감정을 장치 없이 구현해내는 배우들이 대단해보인다.

극장을 나서 집으로 오는 길에 걸을까 버스를 탈까 잠시 고민하다 버스를 택했다. 고작 한정거장이지만 대학로가 있는 혜화동에서 삼선동까지는 꽤 먼 거리다. 버스에서 내려 두 동네를 가로막은 서울성곽을 저만치 올려다봤다. 이해의 산을 넘는다는건 혜화동에서 성곽길을 넘어 삼선동까지 걸어갈 결심을 굳힐 만큼 큰일 아닐까.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이 어려운 일을 해낸, 또 해내고 있는 사랑꾼들에게 진심어린 존경을.

김동완, 이동하, 성두섭, 이진희, 곽선영 출연.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7월 5일까지 공연.

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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