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국내 최고의 의료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의 조기 완화는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거의 모든 역학자들도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외침은 맞바람 앞에서 산산이 흩어진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은 전문가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경제를 재가동하기로 이미 결정한 상태다. 의료전문가들의 경고가 들어맞는다면 앞으로 사망자 수가 크게 늘겠지만, 정부는 정책을 재고하는 대신 사실을 부인하는 쪽으로 대응할 것이다.
실제로 우파 진영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가 크게 과장됐다는 식의 음모론으로 들끓고 있다. 앞으로 몇 달 동안 이 같은 억지 주장은 뎌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미국의 우파는 이미 오래전부터 ‘증거에 기반한 정책’이 아니라 ‘정책에 기반한 증거’를 추구했다. 그들은 사전에 결정된 그들의 아젠다에 방해가 되는 모든 사실를 부인한다. 14년 전, 정치풍자로 유명한 희극인 스티븐 콜버트는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서 “현실은 널리 알려진 진보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는 우스개 소리로 사실을 외면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역학자들의 경고와 조언을 무시하는 우파들의 결기는 과거의 현실부정과는 달리 정치적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보수진영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응전략,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무대응 전략은 기후변화에 대한 공화당의 오랜 접근법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팬데믹은 진보성향의 과학자들이 꾸며낸 거짓이며, 여기에 대응할 경우 경제가 망가진다는 식이다. 사실 최근 몇 주간 벌어진 경제봉쇄 반대시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기후변화를 줄기차게 부인해온 일부 극우 집단들에 의해 조직된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러스 음모론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기승을 부렸던 온갖 종류의 음모론을 연상시킨다. 당시에도 정부가 만연한 인플레이션의 실상을 숨기고 있다는 식의 음모론이 빠르게 번져나갔다. 또 트럼프를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은 ‘고용시장의 꾸준한 개선’ 소식은 가짜 뉴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경제상황에 관한 거짓 주장에 정치적 대가는 따라오지 않았다. 유감스럽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부인 역시 정치적 역풍을 맞지 않았다. 사실 부인의 후유증이 너무 더디게 전개됐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자연환경에 가해지는 어마어마한 장기적 타격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코로나19의 심각성을 부정한 공화당은 불과 몇 개월 내에 거센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지금 그런 조짐이 일고 있다. 일반적으로 위기상황이 닥치면 각국의 국민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경향을 보인다. 바로 이 때문에 거의 모든 국가 지도자들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코로나19의 덕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심각성을 부인하며 수 주일을 허비한 트럼프의 지지율은 잠깐 상승하다 하락세로 돌아섰다. 팬데믹을 진정시키기 위해 강경조치를 취한 전국의 민주당 주지사들은 높은 지지율로 보상을 받고 있다. 반대로 코로나의 위험성을 평가절하하며 경제활동 재개를 밀어붙인 공화당계는 전반적으로 고전하는 모양새다.
이제 후폭풍을 상상해보자. 만약 경제를 재가동하려는 시도가 2차 감염 물결로 이어진다면 주민들, 그중에서도 특히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년층의 불만이 거세질 것이다.
트럼프와 그의 일당이 역풍의 위험을 감수해가며 경제봉쇄 해제를 추진하는 이유가 무얼까.
주식시장이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수천 명의 미국인들이 주가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주식시장에 대한 트럼프의 집착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오랫동안 부인한 배경에는 주가를 해치는 일을 절대 해선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위기가 끝난 양 행동해야 주가를 띄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주가밖에 없다.
또 다른 대답도 있다. 공화당은 총기를 휘두르고 빨간 모자를 눌러쓴 사회적 거리두기 반대 시위자들이 ‘진정한 미국’을 대변한다고 믿는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불편을 감수해달라는 요청에 분노를 터뜨리는 미국인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공화당은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가짜 뉴스로 간주한다.
그러나 필자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경제 재가동을 무작정 밀어붙이는 배경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공화당원들, 그중에서도 특히 트럼프는 상황처리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치면 관리들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상황수습에 나선다. 전문가들을 불러 모으고,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해 집행하는 것이 위기관리의 정석이다. 2014년 에볼라 사태 당시 오바마 행정부도 이와 동일한 접근법을 취했다. 하지만 공화당은 전문가들을 혐오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정책 아이디어란 감세와 규제 해제가 전부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아젠다에 들어맞지 않는 위기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 전혀 알지 못한다. 특히 트럼프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정치 쇼밖에 없다. 문제 해결사로 사위인 자레드 쿠슈너를 내보내 잡음을 일으키는 것을 제외하면, 실제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아이디어가 전혀 없다. 이런 사실을 본인 자신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처럼 부족하기 짝이 없는 위기능력을 감안하면, 잠시 코로나19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듯 싶던 트럼프와 공화당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마치 위기상황이 진정된 듯 떠벌리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아마 잠시 동안 그들은 유권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는 정치적 꼼수 따위에 개의치 않는다. 최종 발언권은 결국 코로나바이러스의 몫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