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미술학도가 그려준 것을 그대로 발주해서는 안 되죠”
서울에서 간판이나 조형물 등을 만드는 업체의 이 모 사장은 공공구매와 관련한 조달 행정의 문제점을 이같이 꼬집었다.
그는 “공공기관 등이 구입하는 품목 중에는 책상같이 범용 제품도 있지만 기계·IT 제품·조형물처럼 전문가들의 의견이 필요한 제품도 많다”며 “그런데 공공 기관이 조달청에 구매 의뢰한 것 중에는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채 대충 올라가는 것들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시장은 “심지어 기업들이 만들지 못하는 아이템이 발주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발주 단계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니 시장 혼선은 불가피하다. 발주 내용을 제대로 검토한 기업은 입찰을 아예 안하고, 이른바 ‘묻지마 입찰’을 한 업체가 물량을 따내지만 결국 포기하는 사례가 나오게 된다. 이 사장은 이런 문제의 솔루션으로 ‘협동조합 역할론’을 제안했다. 그는 “이해관계를 떠나 전문성을 갖춘 협동조합이나 중소기업이 발주 전에 발주 품목을 검토하는 단계를 거치면 기업 혼선을 줄이고 수요기관도 모르고 발주하는 것을 걸러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우선 구매 제도가 ‘탁상행정’ 때문에 현실과 유리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중기조합 임원은 “여성기업이 만든 물량을 사줘야 하는 탓에 공공기관들은 업계에는 이미 ‘없다시피 한’ 여성 기업을 찾느라 일반 기업이 만든 제품은 외면하는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각 부처 관료들이 책상에 앉아 우선 구매 비중을 정하는 것이 문제”라며 “물품을 직접 구매하기 때문에 시장 현실을 파악하고 있는 조달청이 부처별로 각각 올라오는 우선 구매 비중을 조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회사 임원도 “여성 기업, 장애인 기업, 사회적 기업을 도와줄 필요성은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그게 너무 과하거나 불합리한 기준에 따라 집행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시장에서 제기되는 조달 행정의 문제점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부처 이해관계에 매달려 기업 어려움을 외면해선 곤란하다”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