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글로벌 경제와 증시를 괴롭혔던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해 중국에 책임을 물으면서 재개된 갈등은 중국의 무역협상 이행에 대한 불만, 미국 내 투자자들에 대한 중국 기업 투자 자제 요청과 주로 중국 기업인 미국 내 상장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중국 기업 화웨이로의 반도체 수출 제한 확대 등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최근엔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게다가 지난 주말 미국 상무부는 인권 탄압과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33개의 중국 기업과 기관들을 추가로 제재하기로 했다. 작년 10월에도 소수 민족 탄압과 관련된 28개 기업에 대해 제재한 바 있는데, 대상은 주로 감시카메라·인공지능(AI)·보안 등 첨단 기술 업체다. 제재 대상에 포함되면, 미 정부의 승인 없이는 미국이나 미국 기업으로부터 부품 등을 구매할 수 없기 때문에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중국에서도 미국 기업들을 제재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작년에도 미중 무역 갈등은 글로벌 교역량과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특히 수출 주도형 경제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더욱 큰 타격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더 어렵다. 코로나19로 수출·투자·소비 등 경제의 각 부문이 취약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 그나마 기대하고 있는 하반기 회복이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글로벌 증시 역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희망 섞인 분석도 있다. 지금은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지지율이 떨어진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자 결집을 위해 갈등을 조장하고 있어 실제 글로벌 경제가 타격을 받고 증시가 급락할 경우 갈등을 봉합하려는 시도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또 그렇지 않더라도 올해 말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지면 상황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이 상호 협조하는 모습으로 사태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대는 그야말로 ‘희망사항’으로 판단된다. 양국 갈등은 집권자의 정치적 전략에 의해서 이용될 수 있지만, 그 저변에는 주도권을 쥐려는 강대국의 역사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 데 경제와 증시 활황이 중요하다는 관점 역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현재의 어려움을 외부 탓으로 돌리는데 성공해 지지율을 끌어 올린 지도자들 역시 역사에는 흔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각국에서 극단적인 이념을 갖는 정당들이 등장하고 지지를 얻었다. 대공황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은 소득 및 자산 양극화, 낮아지고 있는 잠재성장률은 지지 계층을 겨냥해 그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사용하기 좋은 배경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기마다 다른 나라 정부와 기업은 양국의 갈등 속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는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과거 미소 냉전 체제, 더 이전에 영국이 미국에게 패권을 넘겨줄 때도 갈등과 타협은 반복됐었고, 이 때마다 다른 나라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다. 미중 갈등은 앞으로 전염병처럼 반복될 것이고, 우리 정부와 기업에게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