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궁극의 맛’…음식에 담긴 女재소자들 사연
7개 스토리 옴니버스로…배우들 일인다역
평범한 음식으로 그린 세상과 단절된 이들의 삶
“공존 의미 남다른 시기, 함께 생각하는 시간되길”
━
"엄마의 소고기 뭇국이 생각나. 그래서 너무 싫어"
|
#한 여인이 편지를 읽어내려간다. “엄마가 끓여준 소고기 뭇국이 생각나. (중략) 엄마가 주는 음식 내가 먹을 수 있을까? 못 먹어. 엄마는 내가 주는 음식 먹을 수 있어? 물론 나는 ‘그런 짓’ 안 해. 근데 그 소고기뭇국이 자꾸 생각이나. 그래서 XX 너무 싫어.” 멍한 여인의 눈엔 배식구를 통해 들어온 밥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국이 있다. 뭇국이다. 괴로움에 얼굴을 감싼 여인과 소고기뭇국, 편지,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20대 초반 남성의 시선이 뒤엉킨 이곳은 교도소 독방. 살인 및 방화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수인번호 5946의 공간이다. 엄마가 아들에게 준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엄마의 가슴엔 왜 수인번호 5946이 박히게 됐을까.
뭇국에 담긴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선지해장국·왕족발·파스타·떡이 불러낸 또 다른 그녀들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오는 6월 2일 개막하는 연극 ‘궁극의 맛’을 통해서다. 두산인문극장 2020의 ‘푸드’ 시리즈 두 번째 공연인 ‘궁극의 맛’은 일본 츠치야마 시게루의 동명 만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도박, 폭행, 살인 등 다양한 죄목으로 수감된 재소자들의 사연을 각기 다른 음식으로 풀어낸다. 일본 원작을 기반으로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새 작품을 썼다’고 할 만큼 그 내용이 크게 바뀌었다. 최근 두산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신유청 연출은 “원작은 90년대 일본의 남자 교도소를 배경으로 특별한 음식을 먹기 위해 재소자들이 음식과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를 겨루는 내용”이라며 “요즘 시대에 공감을 사기에 무리인 설정이 많아 감옥과 음식이라는 설정을 빼곤 대부분을 바꾸었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여자 교도소를 배경으로 △무의 시간 △자정의 요리 △선지해장국 △파스타파리안 △왕족발 △펑펑이 떡이 펑펑 △체 등 총 7개의 각기 다른 스토리를 옴니버스로 보여준다. 출연배우들은 장마다 다른 배역을 맡아 일인다역을 소화한다. 맛도 잃고 말도 잃은 엄마, ‘높으신 분’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국회의원 보좌관, 가정부로 일하던 탈북민 아줌마의 ‘사연 담긴 음식’들이 나열되는 동안 관객은 타인의 특별한 삶이 아닌, 너와 내가 매일을 살며 경험하는 각양각색 ‘인생의 맛’을 경험한다.
공연에서 눈여겨볼 것은 객석과의 경계를 없앤 무대다. 배우들은 삼각의 공간을 중심으로 연기를 펼치고, 그 무대를 둘러싼 테이블과 의자가 객석이 된다. 배우들은 이들 의자와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다니며 연기를 펼치기 때문에 관객은 이들과 같은 공간, 한 식탁에서 음식을 먹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관객은 누군가의 삶으로 가까이 다가선다. 작품이 관객에게 선사하려는 메시지는 바로 ‘공존’이다.
신 연출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그저 재밌는 공연을 잘 준비해서 보여주고 객석으로부터 무언가를 받는다는 생각이 컸지만, 지금은 같은 공간에서 같이 생각하고, 체험하고, 여러 생각이 머물다 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공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6월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사진=두산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