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개원까지 협상과 연계하는 (미래통합당) 태도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지난 31일 177석의 거대여당의 원내 교섭을 이끄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대대표와 사흘 연속 만난 후 공개적으로 한 발언이다.
김 원내대표와 주 원내대표는 지난 29일 소주를 곁들인 저녁 회동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가 31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충격받았다”고 토로한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국회의장을 뽑고 나면 의장이 상임위원회를 강제배정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주 원내대표가 말하며 개원을 막고 있다.
하지만 앞서 민주당은 국회 과반인 177석을 앞세워 관례상 의석수에 비례해 배분하는 18개 상임위원장(특별위 포함)을 “모두 가져가겠다”고 엄포를 먼저 놓았다. 이에 주 원내대표가 “국회를 엎자는 것이냐”고 말하며 신경전을 지속해왔다.
이날 민주당의 발언에 통합당은 “18대 국회 때 민주당이 81석일 때 우리는 협치를 택했다”며 되레 반박하고 나섰다.
국회의장을 뽑지 못하면 국회는 개원하지 못한다. 국회의장을 뽑지 못하면 마찬가지로 법안을 심사하는 상임위원도 배분할 수 없다. 여야가 힘싸움을 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으로 시급한 여러 법안의 심사도 요원해진다.
국회의장 선출 못하면 국회 개원·상임위 지연 |
김 원내대표가 “충격 받았다”고 하는 이유는 통합당이 반대하면 국회의장을 선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이은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은 중요한 자리다.
국회의장은 국회법 제15조에 따라 무기명 투표로 재적의원 과반수의 득표를 얻으면 선출된다. 보통 국회는 국회의장이 선출되는 첫 임시회의가 개원하는 날이다.
국회의장은 관례상 여야 합의해온 18개 상임위원회 위원장와 소속 의원을 배정한다. 국회의장이 선출되고 상임위가 구성되어야 정부가 국무회의를 거치거나 의원 10인 이상이 찬성한 법안을 국회에서 심사할 수 있다. 법안이 제출되면 입법이 예고되고 상임위-법제사법위원회-전체회의-본회의 순으로 심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국회법에 따른 올해 개원 일정은 2일 임시회 집회 공고, 5일 임시회 집회 및 국회의장단 선출, 8일 상임위원회 위원장 선출 순이다. 그런데 통합당이 국회의장 선출마저 협상 테이블에 올려 제21대 국회 개원을 늦추고 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주장이다. 국회의장이 없으면 상임위 배분도 안되고 당연히 법안 심사도 할 수 없는 구조다.
물론 국회의장을 177석의 민주당만 참석해 선출할 수 있다. 하지만 제1 야당이 빠진 채 선출한 반쪽짜리 국회의장이라는 오명이 남는다. 생각하기 어려운 선택지다.
한미FTA로 싸운 18대 국회 원구성 8월에 해 |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13대(1988년) 국회부터 임기 시작 후 원구성은 평균 41.4일이 걸렸다. 16대는 17일(전반기 기준), 17대는 36일, 19대는 40일이었다.
여야 원내대표가 사흘 연속 회동에도 ‘충격’ 발언이 나오면서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18대다. 18대 국회는 총선이 치러진 후 시작되는 새 국회(전반기) 개원 가운데 가장 늦은 7월 10일에야 국회의장이 선출됐다. 그리고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는 원구성은 88일이 지난 8월 26일에 완료됐다. 당시 여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두고 싸우느라 총선이 치러진 후 국회가 개원하고도 두 달 넘게 법안 심사도 제대로 못한 것이다.
국회사무처는 “원구성 지연은 국민들에게 개원하고도 ‘일하지 않는 국회’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국회에 해한 신뢰를 저하 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코로나로 각국이 정책 대응에 나서는 상황에서 21대 국회가 개원하고도 법안 심사를 못하면 국민적인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주호영 “지혜 모으겠다”지만 법사위 ‘배수진’ |
주 원내대표는 김 원내대표의 강성 발언을 한 3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개원 협조를 약속했다. 강대 강으로 부딪혀 개원 지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겠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 취약 계층을 보호하는 것이 제 21대 국회의 첫 번째 임무”라며 “국회가 정상 개원할 수 있도록, 김태년 원내대표와 지혜를 모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합당 내에서는 민주당의 양보 없이는 협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기자간담회 후에 통합당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곧바로 논평을 내 “21대 협치 국회를 기대하던 국민과 야당에 (민주당이) 기습공격을 했다”고 밝혔다.
최 원내대변인은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153석을 얻었지만 81석에 불과했던 통합민주당과의 협치를 선택했다”며 “상임위원장 싹쓸이 주장은 지난 30여년 대한민국 국회의 협치 전통을 일거에 짓밟겠다는 것”이라고 맹비판했다.
원구성의 쟁점은 상임위에서 온 법안을 다시 심사하는 법제사법위원장과 예산을 심사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다. 통합당 내에서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통합당이 차지했던 이 두 위원장직을 절대 양보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 강하다.
특히 법사위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기류다. 민주당이 밀어 붙인 법안을 법사위에서 ‘체계·자구심사’로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당의 한 의원은 “예결위냐 법사위냐 라고 하면 법사위를 가져와야 한다”며 “지난해도 민주당과 군소정당이 야합해 예산안을 넘긴 것 아니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