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로 숨진 노조원의 직계 유족을 특별채용할 수 있도록 한 단체협약 규정이 현행법상 무효인지를 두고 오는 17일 대법원에서 공개변론이 열린다. 1·2심은 이 단체협약이 이른바 고용세습으로 이어질 수 있어 민법에서 규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이라 무효로 판단한 바 있다. 반면 산재 사망자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기업이 책임지는 선의의 제도로서 기회균등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어 대법원의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대법원은 1일 산재 사망자 이모씨의 유족들이 기아차·현대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의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오는 17일 오후 2시 대법정에서 진행한다고 밝혔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8번째로 열리는 공개변론이다.
이씨는 지난 1985년 기아차에 입사한 이래 벤젠에 노출된 상태로 근무하다 현대차로 이직한 후 숨졌다. 이에 대해서는 업무상 재해 판정을 받았다. 그의 유족들은 업무상 재해로 숨진 노조원의 직계가족을 특별채용할 수 있도록 한 단협 규정을 근거로 이씨의 자녀를 특별채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측이 거부하자 유족들은 이씨의 사망에 따른 손해배상과 채용의무이행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단협 규정이 고용세습의 수단으로 공정성 등 사회질서에 배치되는지가 공개변론의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법 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라고 규정했다. 현대차와 기아차 노사의 단협을 보면 ‘산재사망자 유족 특별채용 협약’ 규정이 있다. 이에 따르면 업무상 재해로 인해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하여 결격사유가 없는 한 6개월 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고 명시했다.
사측은 이 규정이 민법에 저촉돼 무효라고 주장했다. 원심 재판부는 단협 규정이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현저히 제한하고, 일자리 대물림으로 취업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해야 하는 점에 반한다 보고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아울러 산재사망자 유족의 생계보장은 금전을 지급하는 방식으로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유족 측은 단협 규정이 사용자의 채용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데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로 봐야 한다고 항변하며 상고했다. 이번 공개변론에서는 그간 문제로 지적돼 온 정년퇴직자, 장기근속자 자녀에 대한 특별채용과 이번 산재사망자 유족 특별채용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논쟁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법원 측은 지난 2월부터 고용노동부, 대한변협 등 총 14개 단체에서 의견서를 받았다고 전했다. 공개변론에는 노동법 전문가 2명도 참고인으로 나온다. 이씨의 유족 측에서는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가, 사측에서는 이달휴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출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