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두고 한일 양국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일본이 추가 무역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통상 당국은 일본이 수출규제를 단행한 후 강제징용 배상 절차가 시작되는 것을 가장 경계해왔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시작된 만큼 배상 절차가 가시화하면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일본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상반기에 강제징용 피해 원고들의 일본 기업 자산 매각명령이라도 나오면 타협의 여지도 사라질까 두렵다”고 말했다.
한국 법원의 이 같은 판단에 일본 측은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이날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전화통화를 갖고 “(일본 기업 자산 강제집행에 따른) 현금화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므로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테기 외무상은 지난해 10월에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역시 양국의 관계 복원을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지난해부터 누차 강조했다.
특히 일본은 한국을 압박할 수 있는 제도적 준비를 마친 상태다. 지난해 8월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내 B그룹으로 분류하면서 A그룹 국가로서 누리던 혜택을 박탈해뒀다. 기존 화이트리스트 국가가 포함된 A그룹은 전략물자에 대해 포괄허가(유효기간 3년, 제출서류 간소화, 빠른 심사)를 받는다. 반면 B그룹의 경우 원칙적으로 건별로 심사를 받는 개별허가(유효기간 6개월, 제출서류 9종으로 확대, 심사기간 최대 90일)를 받아야 한다. 이뿐 아니라 비전략물자라고 하더라도 일본 정부가 무기개발 등에 전용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역시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개별허가를 받게 되면 경제산업성이 90일 정도 걸리는 수출신청 심사 과정에서 심사를 고의로 지연시킬 우려가 있고 막판에 제출서류 보완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수출을 막을 수도 있다.
일본이 압박할 수 있는 품목으로는 전기차 배터리, 정밀화학 원료, 플라스틱 등이 꼽힌다. 특히 탄소섬유와 CNC 공작기계의 경우 일본 정부가 무기로 전용할 우려가 있는 품목으로 규정한 터라 제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블랭크마스크 등 반도체 소재의 추가 수출제한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외에 일본이 다른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외 일본이 관세 인상, 송금 규제나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기준 강화 등의 카드 등도 고려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업계 임원은 “블랭크마스크의 경우 메모리와 비메모리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필수 소재로 호야와 울코트 등의 일본 업체가 과점하고 있다”며 “당장 수출제한은 없을 것으로 보지만 최악의 경우 해당 소재의 수입에 차질이 발생하면 삼성의 파운드리 생산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윤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