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대형병원은 경증 환자를 진료하면 불이익을 받고 중증 환자를 진료하면 보상을 받는다. 감기 등 가벼운 병에도 서울 대형병원으로 직행하는 환자가 많아 정작 진료가 시급한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수가 체계를 바꾼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5일 ‘2020년 제9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수가(의사 등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돈) 개선 방안을 심의 의결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발표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에 대한 후속조치로 실제 적용은 유예 기간 등을 거쳐 오는 10월 중 이뤄질 예정이다.
정부가 내놓은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상급종합병원이 경증 외래환자(위장염·당뇨 등 100개 질환)를 볼 경우 의료질 평가지원금은 물론 종별 가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전문병원과 종합병원에 한해 환자 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 평가해 의료질 평가 1등급 기준 외래진찰당 8,790원의 의료질 평가지원금을 얹어줬는데 이를 없앤 것이다. 또 상급종합병원에 적용되던 종별 가산율 30%도 적용되지 않는다.
한편 경증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받는 경우 환자 본인부담률은 기존 60%에서 100%로 상향조정된다. 진료 수가 조정에 따라 환자가 부담하는 진료비가 덩달아 줄어들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는 대신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환자 중심의 진료환경을 마련하도록 여러 인센티브도 함께 마련했다. 우선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 입원료(간호 1등급 기준)를 기존 38만3.000원에서 42만2,000원으로 10% 인상하기로 했다. 희귀·난치 질환자 등 중증 환자를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동시에 진료하는 다학제통합진료의 수가도 인상한다. 의사 4인이 참여할 경우 기존에는 9만4,000원이 지급됐다면 앞으로는 12만3,000원으로 30%가량을 더 받을 수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 시범적으로 운영되던 진료의뢰·회송시스템은 앞으로 모든 상급종합병원 의뢰에 적용된다. 기존에는 환자가 병·의원에 진료의료서를 요구해 선택적으로 상급종합병원에 갈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의사가 적정한 상급종합병원으로 직접 의뢰하고 회송하는 시스템을 원칙으로 적용하도록 했다.
병원 내 안전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안전관리료도 인상되거나 새롭게 추가된다. 지난 2018년 12월 정신질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은 고(故) 임세원 교수 사건을 계기로 마련됐다. 상급종합병원 기준 안전관리료는 1,840원에서 1,920원으로 오른다.
김강립 복지부 차관(건정심 위원장)은 “이번 제도개선은 경증환자의 불필요한 대형병원 진료를 감소시키고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입원 환자 위주로 진료해 우리의 전반적인 의료 역량이 강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