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으로 미국경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정부가 일거리를 주선하는 ‘뉴딜 정책’을 실시했다. 예술계에서는 공공건물의 ‘벽화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주급 23달러를 받고 일하며 붓을 놓지 않았던 잭슨 폴록, 윌렘 드쿠닝, 필립 거스턴 등은 훗날 세계적 거장이 됐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전 세계가 팬데믹을 겪고 있는 2020년, 문화예술 분야의 ‘한국형 뉴딜’은 1930년대 미국의 뉴딜정책에서 이름만 빌려왔을 뿐 내용은 상당히 달라졌다.
3차 추경예산으로 3,399억원을 편성한 문화체육관광부가 계획 중인 한국판 ‘문화 뉴딜’에서는 ‘공공데이터’가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20세기 뉴딜에서의 ‘공공일자리’에 비견할 만한 21세기 뉴딜의 ‘공공데이터’는 공공기관이 만들고 관리하는 자료·정보로, 누구나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 제공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5G(5세대 이동통신)를 경제 고속도로에 비유했다면 공공데이터는 그 길을 달릴 자동차인 셈인데, 공급자의 새로운 시도와 수요자의 다양한 요구가 자유자재로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 남다르다.
3차 추경예산 중 ‘공공데이터’와 직결될 수 있는 사업은 문화예술교육 자원조사(115억원), 예술자료 수집·디지털화(33억원), 애니메이션 디지털아카이빙(46억원), 지역문학관 소장유물 체계화(14억원) 등이다. 콘텐츠 수출액 10조원(2018년 기준)을 돌파한 한류의 중추이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는 ‘콘텐츠 뉴딜’ 역시 공공데이터 활용과 맞닿아 있다.
‘콘텐츠 뉴딜’의 청사진을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국립중앙박물관이 협력해 지난달 20일 공개한 박물관 내 ‘디지털실감영상관’에서 엿볼 수 있다.‘경천사지 10층석탑’에 증강현실(AR)을 접목하고 외벽영상(미디어파사드) 기술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석탑의 ‘3D스캔’에만 1억~2억원의 비용이 들었다. 정부 주도의 공공사업을 통해 1차적으로 창작·생산자를 위한 일거리 제공과 박물관 이용객들의 새로운 콘텐츠 소비가 있었으며, 이 3D스캔 정보를 ‘공공데이터’로 활용하면 복원 및 학술 연구, 관광콘텐츠 개발, 게임·영상 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접목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영준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공공콘텐츠와 공공데이터를 위한 공적 자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가 공공데이터를 무한 활용·향유할 수 있는 게 ‘콘텐츠 뉴딜’의 방향”이라며 “전국 16개 콘텐츠산업 지역거점기관과 기업육성센터, 지역 CKL(콘텐츠코리아랩) 인프라를 활용해 공공콘텐츠를 생산하고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사업화를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문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콘텐츠산업 3대 혁신전략’의 일환으로 실감 콘텐츠 개발에 착수했는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통적 산업구조가 위기를 겪으며 구체적 행보가 앞당겨지고 있다.
김 원장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산업 패러다임이 변하는 상황이라 ‘콘텐츠 뉴딜’에는 디지털 경제 가치의 공공적 구현, 다양성 확보, 수요 중심의 정책 확대가 강조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D스캔 정보를 일례로 든다면 광화문 일대를 가상현실(VR)과 AR 실감콘텐츠로 구현해 ‘5G시대’의 랜드마크로 만들고자 4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인 ‘광화문프로젝트’를 통해서도 공공데이터 구축이 가능하고, 한발 더 나아가 전국 유명사찰·역사적 건축물·문화재 등을 3D스캔해 공공데이터 구축을 구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더욱 부상한 연대·협력·포용의 개념은 우리 콘텐츠 산업의 체질개선과 장수의 비결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