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음에도 ‘곳간 지기’ 역할을 해야 할 재정 당국은 빚 증가를 제어할 수 있는 재정준칙 마련 요구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건전성 악화에 각별히 대응하겠다(홍남기 부총리)”고만 할 뿐 주요국들이 도입한 재정준칙을 우리 정부는 망설이고 있다. 무엇보다 ‘확장재정’을 강조하는 청와대와 여당 분위기에 눌린 탓이 큰데 그나마 최근 감사원이 기획재정부에 재정준칙 도입을 제안하면서 명분이 생겼다는 평가다.
7일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재정준칙 도입과 관련해 여러 대안과 외국 사례를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채무비율 등이 아예 일정 수준을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경직적 성격의 준칙이 있는 반면 수입과 지출 수지, 채무 증가 폭 등을 제어하는 식의 다소 유연한 형태의 준칙도 있다. 기재부는 올 2·4분기 재정준칙안을 마련해 3·4분기 이를 대외적으로 발표하고 연내 법제화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연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제대로 된 논의도 해보지 못한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준칙 얘기를 꺼낼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재정준칙은 필요하다면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면서도 “현재로서는 입법화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야당발(發)로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법안이 속속 제출되고 있다./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