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너를 통해서 나를 보는 무대…우린 환상 앙상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최정원·이효진

崔, 96년 애니役서 주역 '도로시'로 성장

李도 이름없는 단역서 '애니'로 비중 키워

"어떤 배역이든 무대 모든 앙상블이 주인공

연기 못한 갈증 폭발…역대급 공연 될 것"




“오늘 밤 넌, 너만의 페기 소여가 아니라 모든 코러스를 대표한다고 생각해줘. 맨 앞에 서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줘.”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대사는 의외로 주인공이 아닌 앙상블 ‘애니’의 입을 통해 나온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시골 출신의 코러스걸 페기 소여가 스타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여러 명의 코러스 배역 중 한 명인 애니는 극 중 디바인 ‘도로시 브룩’거 부상을 입어 공연이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나는 누가 도로시를 대신할 수 있을지 알고 있다’며 페기에게 주인공을 맡기자고 제안하고, 이후로도 페기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한다.


여기 두 명의 애니가 있다. 1996년 국내 초연 무대의 애니에서 2020년 도로시로 무대에 서는 대한민국 1시대 뮤지컬 배우인 최정원, 그리고 미래의 디바를 꿈꾸는 2020년의 애니 이효진이다. ‘너를 통해 나를 보는’ 두 사람을 오는 20일 공연 개막에 앞서 서울 종로구 연지원 연습실에서 만났다.

단역→디바, 작품의 현실판 최정원
작품 속 페기의 삶은 뮤지컬 배우 최정원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1996년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애니 역을 맡았던 그는 그로부터 20년 만인 지난 2016년 도로시 역으로 다시 합류했다. 작품이 20여 년간 한국에서 롱런하는 동안 명실상부한 ‘뮤지컬 대모’로 성장한 것이다. 최정원은 “초연 당시 전수경 언니가 연기하는 도로시를 보면서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2016년 감사한 기회가 주어졌고, 이번에도 도로시로 함께하게 됐다”며 “한 작품에서 두 개의 배역을 한다는 게 배우에겐 굉장한 행운”이라고 말했다.



이름없는 단역부터‥42번가와 성장한 이효진
이효진은 2013년 42번가의 이름 없는 단역으로 데뷔한 뒤 2016·2017년 앙상블 로레인을 거쳐 2018년부터 애니로 무대에 서고 있다. 기량을 인정받아 작품 속 비중을 키워 온 것이다. 이효진은 “어느덧 앙상블 중 제가 언니 위치가 됐다”며 “동생들을 다독이면서 애니처럼 누군가에게 조력자 같은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디션에 얽힌 뒷이야기도 묘하게 닮은 두 사람이다. 최정원은 사실 초연 당시 주인공 페기 역에 도전했다. “열심히 오디션을 봤는데 결과는 낙방이었죠. 시골 출신에 조금은 어설픈 페기를 연기하기엔 제가 도시적 이미지가 강했나 봐요.” 연출은 대신 앙상블 중 최고 기량을 뽐내는 애니 역을 제안했고, 그렇게 42번가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효진의 경우 2016년 애니 배역으로 오디션을 봤지만, 또 다른 앙상블인 로레인 역에 캐스팅됐다. 이후 세 번째 도전 끝에 2018년 시즌부터 애니 역을 손에 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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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함께하면서 관심이 주인공 페기가 아닌 도로시로 옮겨갔다는 점도 같다. 최정원이 “도로시는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이 성취한 자리를 지키려는 욕심이 크지만, 후배를 위해 내어줄 때도 아는 모습이 정말 멋진 배역”이라고 평하자, 이효진이 “여배우의 카리스마와 사랑스러운 모습이 공존하는 도로시 캐릭터가 매력적”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그러면서 “언젠가 정원 선배님같이 멋진 도로시를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무대 위 모든 배우가 주연인 42번가




42번가는 무대에 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배우들이 깊이 공감하는 작품이다. 앙상블부터 시작해 주연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드물어지면서 그 의미는 더욱 커졌다. 최정원은 “첫 연습 날 상견례 자리에서 효진이가 ‘여기 모인 수십 명의 페기들과 좋은 공연을 올리고 싶다’고 말하더라”며 “배역 이름이 있든 없든, 무대 위 모든 앙상블이 주인공인 작품이 바로 42번가”라고 강조했다. 이효진은 “한때는 빠르게 주연을 꿰차는 친구들을 보며 무대에서 내 시계는 왜 이리 더딜까 고민도 많았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지금 이 시간을 잘 견뎌야 나이를 먹어도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우리 정말 공연할 수 있는거야?"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배경은 1930년대 대공황기, 모든 공연이 멈춰선 브로드웨이다. 공연의 첫 대사는 “우리 정말 공연할 수 있는 거야?”라는 누군가의 외침이다. 역병 앞에 무대와 관객을 잃었던 배우들에게 이 대사는 지금까지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그래서 더욱 기대되는 ‘브로드웨이 42번가 2020 시즌’이다. 최정원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연습에 임하고 있다”며 “배우들의 그동안의 갈증이 폭발하며 역대급 공연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8월 23일까지 샤롯데씨어터./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

송주희·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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