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렉산더 플레밍이 개발에 성공한 항생제 페니실린이 우연히 연구실에 날아든 푸른곰팡이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기적의 신약’이 무려 10여년 동안 방치됐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1929년 플레밍이 영국의 한 의학저널을 통해 소개한 페니실린은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194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시장에 나올 수 있었다.
프랑스의 생화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자연발생설 비판’이라는 저서를 발간한 것이 1861년인데 그 전에 인류는 모든 병의 원인이 세균이 아닌 나쁜 공기라고 믿었다. 파스퇴르에 앞서 세균의 존재를 의심했던 헝가리의 산부인과 의사 제맬 바이스는 그 추론을 입증하지 못하고 세간의 조롱을 받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그곳에서 경비원에게 맞아 사망했다.
당뇨병에 대한 인류의 기록은 기원전 2,000년 인도에서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무서운 질병의 치료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1889년 요제프 폰 메링과 오스카 민코프스키라는 유럽의 의사들이 췌장의 기능을 확인했을 때부터다. 그리고 지금은 빅파마 중 하나인 일라이릴리가 인슐린을 북미 시장에서 처음 판매한 것은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1923년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가져온 반쪽짜리 일상이 몇 개월째 계속되자 “도대체 치료제나 백신은 언제쯤 나올 것 같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신약의 탄생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었지만 제약사에서 40여년간 신약개발 업무를 맡았던 도널드 커시의 ‘드럭헌터’를 통해 그 지난한 여정이 새삼 크게 느껴졌다. 무수히 많은 신약 후보 물질 중에서 상용화에 성공할 확률은 0.02%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지구상의 수많은 개발자들은 자신이 피실험자가 되는 노고를 감내해가며 신약을 찾고 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되지 못하면 우리는 수개월 전까지 누려온 당연했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우리가 신약 개발 과정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실패와 크고 작은 오류들에 대해 질책이 아닌 응원을 보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주요 성분의 세포 구성에 착오가 확인된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는 사업화 결정부터 국내 품목허가까지 20년이 걸렸다.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수천억원을 쏟아부어 개발된 신약이다. 하지만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를 취소하는데는 오류를 발견한 후 채 두 달도 걸리지 않았다.
반면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코오롱 측에 서한을 보내 “임상 보류의 원인이 됐던 모든 사안이 만족스럽게 해결됐다”며 “인보사 임상 3상을 진행해도 좋다”고 통보했다. 신약 후보에 대해 미국 전문기관이 어떤 자세를 보이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믿고 기다리는 것으로 곧 세상에 나올지 모르는 신약이 앞서 겪어야 하는 우여곡절에 응원을 보낸 것이다.
2015년 8건의 신약 후보 기술 수출계약을 체결하면서 국산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높인 한미약품. 하지만 이후 5건의 계약이 해지되면서 기술이 반환됐다. 하지만 한미약품의 잇따른 실패를 아무도 비난하지 못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국산 신약을 만들어보자는 임성기 회장의 도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철 지난 오리지널의 복제약이나 만들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암과 희귀질환과 감염병의 완전한 퇴치를 위해 때로는 조롱과 비웃음을 감내해가며 신약개발에 매달리는 연구자들이 있다. 그들의 실수에 격려와 위로가 필요한 이유를 커시는 이렇게 설명한다. “약학 연구자의 대다수가 아픈 사람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약을 찾는 데 헌신하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의약품 리콜 사건의 대부분은 기만이나 탐욕이 아니라 인간 생리에 관한 지식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저지른 진짜 실수 때문에 일어난다.” ju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