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노릴스크

1953년 스탈린 사망 직후 시베리아 중부의 노릴스크에서 수용소에 수감된 1만6,000여명의 죄수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영하 30~50도의 혹한에서 이뤄지는 노역에 지친 이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300여명의 사망 끝에 반란은 끝났지만 수용소의 참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이듬해 6월 폐쇄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상당수 노동자는 모스크바 등에서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일을 계속했다. 냉전 시절 옛 소련 중공업의 상징이자 북극권 최대의 산업도시인 노릴스크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북위 69도에 모스크바에서 3,000㎞ 떨어진 곳에 있는 노릴스크는 연중 9개월 동안 겨울이 이어지고 280일 눈이 내린다. 노릴스크는 1930년대 도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정부는 정치범들을 이곳으로 보내 광물을 캐는 노동을 시켰다. 죄수 노동자들은 1939년 콤비나트의 공장 가동 후에 계속 늘어 1950년대 초 7만명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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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릴스크가 영구 동토인데도 주목받은 것은 엄청난 광맥 때문이다. 세계 팔라듐의 35%, 백금의 25%, 니켈의 20%, 로듐의 20%가 이곳 콤비나트에서 나온다. 동과 코발트도 다량 생산된다. 그만큼 대규모 중공업 시설이 들어찼다. 1980년대에는 인구가 한때 26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산업화는 환경 파괴를 불렀다. 대기가 황산화물로 오염되면서 인근에 나무가 자라기 힘들게 됐다. 인구 10만명대 도시 중 환경 오염이 가장 심각하다. 주민들은 각종 암과 피부·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하고 도시 성인의 4%만이 건강하다.

최근 노릴스크의 한 화력발전소에서 경유 2만여 톤이 유출돼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온난화로 동토층이 녹자 발전소 기름탱크를 떠받치던 기둥이 주저앉아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기름은 암바르나야강을 통해 북극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정작 현지 정부는 사고 이틀 뒤에야 소셜미디어를 통해 처음 파악했다. 격노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발전소 관리자를 즉시 구금했다. 북극권 최대의 이번 오염 사고를 계기로 산업화 속 그늘진 환경 문제를 바로잡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영기 논설위원

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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