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로 이른바 ‘정의연(정의기억연대) 사태’가 터진 지 약 한 달이 흐른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으로 입장을 내놨다. 위안부 피해자 쉼터 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하루가 지난 시점이기도 했다. 그간 청와대는 정의연 사태가 윤미향 의원(전 정의연 이사장)이 몸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차원의 문제라며 선을 긋고 기부금 유용 의혹의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위안부 운동 자체에 대한 평가절하가 이어지면서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위안부 운동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일각의 폄훼 시도를 일갈했다. 이번 이슈를 윤미향 의원과 이용수 할머니의 대립 구조로만 바라보지 말고, 위안부 운동의 발전적인 방향을 고민하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 문 대통령의 생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발언 배경에 대해 “위안부 운동이라는 본질이 정의연, 윤 의원 등 외피에 의해 훼손되면서 이를 구분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라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모두발언 곳곳에는 ‘위안부 운동은 그 자체로 존중돼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돼 있었다. 문 대통령은 피해자 할머니가 주축이 되어온 위안부 운동의 30년사를 짚으며 “결코 부정하거나 폄훼할 수 없는 역사”라고 말했다. 또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져야 한다”며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숭고한 뜻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대의를 손상시키려는 일각의 시도에 대해서는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피해자 할머니들의 존엄과 명예까지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고발하고 여성 인권의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헌신한 위안부 운동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이번 논란에 대해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이나 행태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도 평가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지금의 논란과 시련이 위안부 운동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시민단체의 불투명한 기부금 운용에 대한 해결책으로 ‘통합관리시스템 구축’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정부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기부금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기부금 또는 후원금 모금활동의 투명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시스템 도입이 성숙한 기부문화를 안착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도 투명하게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윤 의원을 언급하지 않으며 거리를 뒀지만,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서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라며 높이 평가했다. 문 대통령과 이 할머니는 다섯 차례 만난 적 있을 정도로 인연이 깊다. 이 할머니는 청와대에 두 차례 초대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를 세계적 문제로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셨다”며 이 할머니가 세운 그간의 공로를 하나씩 열거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논란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운동이 계속돼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상처는 온전히 치유되지 못했고 진정한 사과와 화해에 이르지 못했다”며 “역사적 진실이 숨김없이 밝혀지고 기록돼 자라나는 세대들과 후손들에게 역사적 교훈으로 새겨져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