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는 10일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임, 감사 선임 시 주주총회 결의요건 완화 등의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마련해 11일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다중대표소송은 임무를 게을리해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모회사 주주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다. 비상장회사 주식 전체의 100분의1이나 상장회사 지분 1만분의1을 보유한 주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개정안에는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 중 1명 이상을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다만 정부 여당이 이들 방안과 함께 논의돼온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은 재계의 입장을 반영해 이번 개정안에서 제외됐다.
새로 도입되는 두 제도에 대한 설명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한 배경은?
△자회사 이사가 자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모회사 주주가 해당 이사를 상대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그동안 없었다. 현재로선 ‘대표소송제’가 있는데, 대표소송이란 A라는 회사의 이사가 배임 등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칠 경우, A회사의 주주들이 그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이다.
여기서 강조돼야 할 점은 주주들은 자신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들이 이사에게 손해를 끼친 금액만큼을 회사에 보전하라고 하는 것이다. 즉 회사에 입힌 손해를 회사에 갚으라는 것으로, 소송에서 주주들이 이길 경우 주주들은 본인들이 직접 이득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 이득을 챙긴다고 보면 된다.
-소수주주들의 소송이 남발할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가 있는데?
△재계는 이번 상법 개정안 내용 중에서 다중대표소송제의 도입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소송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불만을 가진 주주들이 지나치게 소송을 제기해 기업 비용이 늘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그럴 일은 없다는 입장이다. 명한석 과장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선 현재도 운영되는 대표소송제를 활용한 건수는 많아야 1년에 1~3건 정도다. 또 본인의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는 게 아니라 회사에 끼친 손해를 보전하라는 취지의 소송이므로, 주주의 입장에선 소송을 쉽게 제기할 유인이 없다. 주주 입장에선 굉장히 일이 많은 소송이고, 자회사 이사의 행위로 자신이 주식을 가진 모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게 치명적인 수준일 경우에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사가 불법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있어야만 소송제기가 가능해 제기 요건도 까다롭다.
또 법무부는 그동안 재계와 논의를 꾸준히 해온 만큼 다중대표소송제 도입도 일정 수준의 합의가 이뤄졌다고 보고 추진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명 과장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대한상공회의소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해왔다”고 덧붙였다.
-기업들과 상의를 했다는데, 기업의 입장은 어떤 부분에서 반영됐는가?
△법무부는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임기 때부터 상법 개정을 추진해왔는데, 당시에는 집중투표제 등의 도입도 주요 과제였지만, 이번 상법 개정안 발표에선 집중투표제가 빠졌다. 재계가 꾸준히 우려를 제기해온 제도라 법무부가 재계 입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2명 이상 선임해야 할 때, 주주총회를 열어 1주당 의결권 1표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뽑아야 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주고, 이 의결권을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즉 이사 3명을 뽑아야 할 경우 1주당 3표를 얻어 이를 이사후보 한명에게 몰아줄 수 있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들 대신 투기펀드가 의결권 행사를 악용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과거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를 공격했듯이 해외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 경영권에 개입하는 일이 늘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집중투표제의 경우 검토를 해왔지만, 대주주가 경영권을 효과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재계 입장을 받아들였다는 입장이다. 다중대표소송제 등 견제장치를 확대하는 동시에 경영권 침해 우려가 나오는 집중투표제 등까지 추진할 경우 대주주에게 부담이 클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하도록 한 규정을 도입한 것은 어떤 효과가 있나?
△현재 상법은 이사를 먼저 선임한 후 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임하도록 규정해 이사 선임 단계서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되지 않으므로 대주주 의사에 부합하는 이사만 감사위원 후보자로 선임됐다. 대주주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현행제도를 바꾸고, 앞으로 감사위원 중 1명 이상을 이사 선출단계에서부터 다른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도록 한다.
법무부와 재계는 상법 개정안을 논의하며 다중대표소송제와 달리 감사위원의 분리선출제에 대해선 비교적 큰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상장회사 감사위원회 위원의 3% 의결권 제한 규정에 대해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최대주주와 나머지 주주, 2조원 이상 상장사와 나머지 상장사를 이원해 취급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법무부는 구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고 해석상 혼란이 있어 일원화시켰다. 법무부 관계자는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확보해 경영 건전성과 투명성을 제고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