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개인 정보’라는 말은 얼마나 의미를 지닐까. 개인의 소중한 정보는 세계인이 공유하는 만인의 정보가 된 지 오래다. 주민등록번호는 물론이고, 내가 다녀간 장소와 검색 기록마저도 누군가에게 판매되고 있다. 인터넷상의 개인 정보가 ‘21세기의 석유’로 불리며 막강한 자원이 된 지금, 데이터 윤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찰이 필요한 이유다.
신간 ‘데이터 프라이버시’는 니혼게이자이신문 데이터 경제 취재반이 2018년 연재한 기획을 바탕으로 인터넷 산업 발달이 불러온 개인정보 보호와 사생활 침해 이슈를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이야기는 일본 사회에 데이터 윤리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리쿠나비 사건’에서 출발한다. 지난해 8월 일본 리쿠르트 그룹 산하 취업 정보사이트인 리쿠나비는 취업 준비생들의 데이터를 동의 없이 대기업에 판매해 논란이 됐다. 판매된 데이터는 개별 구직자들의 기업 채용공고 열람 내역과 각 구직자들의 최종 입사 여부를 수치로 만든 ‘내정사퇴율’이었다. “내 삶이 데이터 알고리즘에 좌우되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낀다.” 한 취업준비생의 한탄은 비단 일본에만 국한된 것일까.
책은 데이터를 통해 사람을 차별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으로 개인 등급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중국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대출 서비스 ‘즈마 신용’은 이용자의 신용도를 평가해 점수에 따라 금리를 적용한다. 채점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알리바바의 스마트폰 결제 서비스 이용 빈도와 신용도가 높은 친구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교류 등이 반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부터 취업, 주택임대, 결혼서비스 등 데이터에 의한 등급 평가는 새로운 빈곤층, ‘버추얼 슬럼(virtual slum)’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책이 데이터 공룡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에 대한 규제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기술의 한쪽 면만 보고 가능성을 죽이는 것은 영국의 ‘붉은 깃발법’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은 과거 마차사업 보호를 위해 ‘자동차는 붉은 깃발을 단 마차 뒤에서 제한된 속도로 따라가도록’ 규제했고, 결국 자동차 대국의 자리를 미국과 독일에 내줬다. 저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진보주의를 죽여서는 안 된다”며 “폐해는 줄이고 혜택은 고루 누릴 수 있도록 데이터의 올바른 활용에 대한 개인·기업·국가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장기간에 걸친 기획 취재답게 심도 있는 사례와 분석이 돋보인다. ‘10시간 만에 본인 특정’ ‘내 신용도는 얼마일까?’ 등 기자의 현장 체험도 수록돼 흥미롭게 주제에 접근할 수 있다. 1만4,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