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서울경제가 만난 사람] 민승규 "농업에 AI·빅데이터·생명과학 접목..'디지털 강소농' 육성해야"

[민승규 한국벤처농업대학 설립자(국립한경대 석좌교수)]

포스트코로나 식량안보 중요…식물성 고기 등 '빅블러' 현상 심화

구글·MS·텐센트 등 농업혁명에 투자, 우리도 대담한 도전 필요

한국을 '아시아 농업 허브'로 띄우려… '농업 AI 대회' 개최 추진

민승규 한국벤처농업대학 설립자(국립한경대 석좌교수)가 12일 서울 청계산 아래 영동농협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소농에 맞는 한국형·아시아형 스마트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며 “코로나19 상황을 봐가며 아시아 인공지능(AI) 농업대회를 열겠다”고 밝히고 있다.민승규 한국벤처농업대학 설립자(국립한경대 석좌교수)가 12일 서울 청계산 아래 영동농협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소농에 맞는 한국형·아시아형 스마트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며 “코로나19 상황을 봐가며 아시아 인공지능(AI) 농업대회를 열겠다”고 밝히고 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곳, 기계화가 됐어도 60대 이상 농부가 감당하기에는 힘겹기만 한 농사….’

우리 농촌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농촌 공동화 현상은 미국·유럽 등 세계적 추세이기는 하나 우리나라는 정도가 매우 심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4차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농어촌의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이 사회적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여건이 만만치 않다. 이런 때 정부에 의존하지 않는 ‘한국형·아시아형 농업 모델’ 정립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민승규(59·사진) 한국벤처농업대학 설립자를 지난 12일 서울 청계산 아래 영동농협에서 만나 진지하게 해법을 모색했다. 이날 그는 경제연구소와 청와대·정부 근무, 네덜란드 연수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등 아시아의 소농(小農)에 맞는 농업혁신 솔루션을 내놨다.

/대담=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그는 코로나19 사태와 기후위기로 안전한 먹거리와 식량 안보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미국에서 급성장 중인 ‘식물성 고기’ 등 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 블러(Big Blur) 현상을 들어 농업에 인공지능(AI)·빅데이터·생명과학을 적극 접목해 ‘디지털 강소농’을 육성하고 ‘스타 농업인’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물론 시설농업 등 첨단농업만 있는 게 아니다”라며 “친환경·유기농업도 있고 노인 등을 위한 보건·복지 결합 개념의 치유공간인 ‘케어 팜’까지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우리나라가 소농이고 고령농이라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진짜 위기입니다. 우리의 40% 크기에 환경도 척박한 네덜란드가 세계 농식품 수출 2위 아닙니까.” 그는 공직을 떠나 2012년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으로 복귀한 뒤 ‘우리 농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라는 걱정에 홀연히 사표를 내고 2016년 10월부터 네덜란드에서 1년간 연수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한 젊은이가 ‘스마트팜이 뭐냐’고 묻는데 잘 몰라 얼버무리는 과정에서 부끄러움을 느껴 연수를 결단했다고 했다. 객원연구원이었던 와게닝겐대뿐 아니라 프랑스·독일·벨기에 등 유럽 농촌 구석구석을 다녔다.



“와게닝겐은 수도인 암스테르담에서 50㎞ 떨어진 소도시인데 400여개의 글로벌 농식품기업 연구개발(R&D)센터가 있어요. 세계 최고의 푸드테크밸리죠.” 당시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농업에 접목하는 IoF(Internet of Food&Farm) 연구과제를 하던 조지 비어 교수로부터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농업에 접목되면 경험하지 못한 규모와 속도로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질텐데 어느 나라가 농업혁명의 주인공이 될지 주목된다’는 말을 듣고 밤잠을 설쳤다. 농업사에서 18세기 작물을 교대로 짓는 돌려짓기(윤작법)으로 생산성을 높이다가 20세기 중반 농약·비료를 많이 치는 다수확 품종이 대세가 된 뒤 이제 농업경쟁력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접목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신농업혁명에 구글·마이크로소프트나 중국 텐센트 등이 엄청 투자하며 전후방 산업을 만들고 있는데 우리도 대담한 상상과 도전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게임의 법칙’과 ‘성장 방정식’에 적응하는 개인이나 국가와 그렇지 못한 곳은 ‘초격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현재 인간과 AI가 대결을 한다면 누가 더 작물을 잘 키울까. 처음에 텐센트가 후원하는 조건으로 2018년 와게닝겐대가 주관해 오이를 놓고 벌인 ‘제1회 세계 농업 AI 대회’에서는 본선에 오른 5개팀 중 사람을 이긴 곳은 한 곳뿐이었다. 하지만 방울토마토를 재배한 제2회 대회에서는 본선 AI팀 5곳 모두 베테랑 농부를 이겼다. AI가 스스로 판단해 유리온실의 토마토를 재배한 뒤 심사위원단이 수량·품질·판매가격, 에너지 사용량, 전략을 평가한 결과다. 한국은 2회 대회에서 민 교수가 단장이 돼 서현권 에이넷테크놀로지 대표, 이경엽 스페이스워크 CTO, 조진형 아이오크롭스 대표 등 14명으로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뜻으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작명)팀을 짜 본선에서 3위를 했다는 통보를 최근 받았다. 앞서 1회에서는 한 대학팀이 예선의 벽을 넘지 못했다.

관련기사



그는 “와게닝겐대는 30년간 축적한 데이터와 농업용 시뮬레이터를 갖고 있어 대회를 주관할 수 있었다”며 “처음 24시간 시뮬레이션 대결로 예선을 치르고 본선에 오르면 온실에 카메라와 센서 등을 달아 6개월간 원격으로 방울토마토를 재배했다”고 설명했다. AI 농부는 수년 내 실용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앞으로 노지 재배에도 접목이 가능하다는 기대를 받는다. 민 교수는 농업 AI 대회에서 AI 실력을 맘껏 발휘한 중국, 농업기술이 뛰어난 일본과 함께 소농이 이용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 기반 ‘아시아형 스마트팜 모델’을 추진할 것이라고 청사진을 밝혔다. 네덜란드의 유리온실은 투자비가 10억~20억원에 달해 아시아 소농과는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이 아시아 농업 허브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 4~5년 내 아시아판 농업 AI 대회를 개최할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농업 시스템을 정비하고 연구개발(R&D)도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비교우위를 도출하고 호환 가능한 표준화, 기술재산권 보호, 정보공개, 소농 기술교육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농업 R&D 예산이 연 1조원 규모로 네덜란드보다 크지만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 교수는 구글어스의 위성사진을 띄워 중국 최대 농업생산지인 산둥성의 수광시를 가리키며 “1억여평의 비닐하우스에서 채소를 기르는데 설계·시스템·AI 설비 등의 시장을 우리가 공략할 수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쪽은 더 크다”고 의지를 보였다.



첨단농업에 관한 설명은 드론과 AI 레시피(요리법)로까지 이어졌다. 그는 “네덜란드 파츠사는 온실의 골칫거리인 나방의 궤적을 감지해 0.6초 만에 프로펠러로 산산조각 내는 1유로(1,360원)짜리 초소형 드론을 선보였다”고 말했다. 나방이 한꺼번에 200~500개의 알을 낳아 애벌레가 되면 잎을 갉아먹고 소비자는 알이 박힌 채소를 먹는 불편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농약을 줄인 친환경·유기 농업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민 교수는 “IBM의 AI인 왓슨은 3만개의 레시피를 응용해 1,000조개까지 제시했는데 김치도 김치씨푸드케이크 등 수만가지를 내놓고 있다”며 “농업은 종자·생산·유통·농기계·금융·교육관광뿐 아니라 AI·ICT·빅데이터·농생명바이오 등 다양한 밸류체인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모두가 첨단농업에만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노인이나 몸이 불편한 분들의 요양을 위해 특화한 ‘케어팜’을 이미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정부 지원으로 1,200개까지 늘었습니다. 농업에 보건·복지를 결합해 노르웨이·벨기에·스위스 등으로 널리 퍼졌죠. 농촌의 차별화된 비즈니스모델로 인상적이지 않나요.”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3월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치유농업을 지원할 기반이 마련됐다.



민 교수는 ‘식물성 고기’ 업체인 ‘임파서블버거’나 ‘비욘드미트’를 예로 들며 국내 축산농가에 비상벨이 울렸다고 했다. 식물성 고기가 콩 뿌리 DNA를 조작해 실제 고기의 질감·육즙 등을 구현한 데 이어 더 많은 영양소를 함유한 쇠고기·돼지고기가 이미 나왔고 닭고기·물고기까지 선보일 것이라는 얘기다. 오는 2030년대 중반에는 공장식 축산을 적지 않게 대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미국 축산업계가 나서 식물성 고기에 대해 고기라는 말을 쓰지 못하도록 반발하고 있다”며 “하지만 공장식 축산은 분뇨와 악취를 내뿜고 탄소 배출로 기후위기를 부추긴다는 비판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 교수가 국내 5,000여곳의 양돈농가 중 마이스터 7명을 대상으로 와게닝겐대 전문가와 현지 양돈농가 등과 화상을 통해 매달 3시간씩 1년간 혁신적인 교육·컨설팅을 주선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네덜란드 돼지는 연간 27마리를 낳는데 우리는 19마리에 그친다”며 “동물복지·사료·생산비와 판매가·질병·데이터 관리·번식·농장 비교 등 ‘와게닝겐 마스터 클래스’ 과정을 운영해 졸업장에 와게닝겐대 총장과 국내 교육을 맡는 농협 축산대표의 사인이 같이 담기게 된다”고 했다.

그는 창의력과 혁신이라는 의미도 곱씹어봐야 한다고 했다. “작은 정육점에서 출발한 네덜란드의 대형 유통체인인 ‘알버트 하임’을 갔는데 고객이 매장에서 직접 ‘허브’를 따 흙을 씻고 계산하더라고요. 바로 주말농장에서 싱싱한 채소를 따 먹게 하는 경험을 주죠.” /정리=고광본선임기자 사진=성형주기자

he is..

△1961년 서울 △1988년 동국대 농업경제학과 △1994년 일본 도쿄대 농업경제학 석·박사 △1995~2008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2001년 한국벤처농업대학 설립 △2008~2011년 대통령실 농수산비서관,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 농촌진흥청장 △2012~2016년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2016~2017년 와게닝겐대 객원연구원 △2018년 국립한경대 석좌교수

고광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