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미국 내 품목허가가 예정됐던 의약품의 출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일정이 하염없이 미뤄지는 등 바이오의약품 업계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시장과 당국의 관심이 온통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로 쏠린 사이 다른 의약품 출시는 늦어지면 올해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15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미국 바이오기업 바이오젠은 최근 3·4분기에 치매 치료제 ‘아두카누맙’의 품목허가 신청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애초 밝혔던 올해 초에서 6개월 이상 밀렸다. 코로나19로 인해 식품의약국(FDA)와의 조율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임상 일정에 차질을 빚은 가장 큰 원인으로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꼽힌다. 치매 치료제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이들 대부분이 고령층인데, 이들이 코로나19에 특히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임상시험 도중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한다면 연구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지난 2월말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의 한 호텔에서 열린 연례 리더십 회의 후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매사추세츠 보건국에 따르면 바이오젠 관련 코로나19 확진자는 100명이 넘는다.
해외 투자기관의 분석은 더욱 비관적이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는 바이오젠의 아두카누맙 신청서 제출과 검토에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밝혔다. 이에 애널리스트 역시 올해 품목허가 승인에서 2022년으로 기한을 연장했다. 코리 카시모프 JP모건 애널리스트는 의료전문가 30인을 통해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설문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이 ‘아두카누맙’ 허가에 부정적이었다”고 밝혔다.
지난 2007년 스위스 뉴리뮨사에서 확보한 아밀로이드베타 항체인 아두카누맙은 ‘치매 환자의 뇌 속에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많이 쌓이는 만큼 이를 제거하면 알츠하이머를 개선할 수 있다‘는 가설을 근거로 개발돼 왔다. 지난해 3월 무용성평가를 통과하지 못하고 임상 3상 중단을 선언했으나 같은해 10월 “고용량에서 효능이 확인됐다”며 임상 3상 재개를 선언했다.
이밖에 코로나19로 올해 출시가 예상됐던 다른 기업들의 신약 역시 품목허가 일정이 줄줄이 밀리고 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임상시험을 수행해야 할 병원과 이를 심사할 FDA 모두 새로운 의약품 허가에 투입할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로슈의 경구용 척수성 근위축증(SMA) 치료제 리스디플람의 품목허가 심사가 3개월 연기됐다. 척수성 근위축증이 극희귀질환에 속하는 치명적인 질환이지만 바이오젠의 ‘스핀라자’나 노바티스의 ‘졸젠스마’가 동일한 적응증으로 품목허가를 받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이달 초에는 노바티스의 다발성경화증 치료제 오파투무맙의 품목허가 심사도 3개월 연기됐다. 이 의약품은 선발품목인 오바지오 등과의 재발율을 비교한 결과 연간 재발율을 더 낮추며 관심을 끌었다.
인터셉트의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제 오베티콜리드 역시 지난 9일로 예정됐던 FDA 자문위원회 회의가 연기됐다. 앞서 FDA는 지난해 11월에 오베티콜리드를 NASH 환자의 간 섬유증에 대한 혁신치료제로 지정해 우선심사를 결정했다. 지난해 12월 FDA는 자문위원회 회의 날짜를 4월 22일로 정했지만 올해 3월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회의 날짜를 6월 9일로 연기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의 2차 유행 가능성도 제기되는 만큼 FDA 등 심사기관은 물론 임상시험을 수행할 병원 모두 모든 역량을 코로나19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