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작가 김훈이 ‘역사’ 대신 ‘역사 이전 세계’에 주목한 이유

■신작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출간 간담

“인간 야만과 적개심, 공포 뿌리 알고 싶었다”

“현 시대에도 야만은 분명…양육강식 여전해”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과 달리 ‘판타지 소설’

김훈 작가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김훈 작가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고대사를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수 백 년 동안 거의 매일 싸웠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피가 강물처럼 흘러서 방패가 떠내려갔다고 김부식이 써놓기도 했다.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그 적개심의 뿌리를 알 수가 없어 공포마저 느낀다. 하루에 성을 몇 개씩 빼앗으면서 몇천 명씩 죽였던 그 야만과 적개심 그리고 야만 속에서 문화라는 게 발전하는 모습을 써보려고 했다.”

소설가 김훈이 신작을 냈다. 제목은 ‘달 너머로 달리는 말(파람북 펴냄)’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전작 3종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과 달리 이번 소설은 역사적 기록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막막한 시원(始原)의 한 지점,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시공의 세계를 다뤘다. 일종의 판타지 소설이다.


흔히 생각하는 ‘김훈의 소설’을 떠올리며 책을 펼쳤다가는 적지 않게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훈의 문장’은 그대로다. 무심함이 느껴질 정도로 간결하면서 동시에 힘이 넘친다. 그러면서도 예리하고도 정확하다. 그래서 상상의 세계를 써내려갔는데도 사실처럼 느껴진다.

김훈 작가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김훈 작가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런 형식의 소설을 내놓게 된 이유로 김 작가는 인간의 야만성을 지목했다. 김 작가는 16일 오후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출간기념 간담회에서 “한국 고대 국가들은 부처님의 자비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았음에도 매일 싸웠다”며 “지금처럼 진보, 보수, 좌파, 우파 이런 게 없는데도 그러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왜 이토록 야만적인가, 그 뿌리는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인간의 존재와 세상에 대한 의문이 김 작가로 하여금 다시 글을 쓰게 했다는 설명이다.


소설에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맞서는 유목 국가 초(草)와 농경 국가 단(旦)이 등장한다. 결코 화합할 수 없는 두 세력 간에 전쟁은 일상이고, 숙명이다. 전쟁을 통해 서로 다른 가치관이 매번 부딪히고 야만과 문명이 뒤섞여 갈등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공허한 민낯이 드러난다.



인간의 야만성을 더 부각하는 존재는 말이라는 동물이다. 김 작가는 십여 년 전 미국 인디언 마을에서 직접 마주했던 수백 마리의 말 무리에서 받았던 영감을 이번 소설에 적극 투영했다고 했다. 그는 “수백 마리가 함께 있는데도 각각 혼자 있는 것처럼 어둠을 조용히 맞고 있었다”며 “그때 언젠가 저 말에 대해 무언가를 쓰게 되겠구나 하는 모호하고도 강한 충동을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번 소설을 위해 그는 “말의 습성, 역사, 인간에게 사육된 과정 등 관련 자료를 모은 후 말이 인간의 문명과 야만을 감당하는 과정을 머리 속에서 재구성했다”고 설명했다.



현재도 야만의 시대...약육강식 여전해
현 시대의 야만에 대해서도 생각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 시대의 야만은 분명하다”며 “약육강식을 청산하지 못하고 심화시켜 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약자가 자신이 가진 고기를 강자의 먹이로 줘야만 살 수 있다면 그건 인간이 살 수 없는 세상이지 않나”며 “그런데도 이런 문제에 대한 인간의 사유는 깊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이번 소설을 쓰는 도중에 심장 질환으로 투병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글쓰기가 주는 즐거움은 컸다. 그는 “내가 쓰는 언어로 정보를 전달하거나 서사를 전개할 뿐 아니라, 화가가 물감 쓰듯이 음악가가 음을 쓰듯이 그렇게 한번 언어를 전개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런 언어 사용이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고 느낄 때 기뻤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현재 구상하고 있는 다음 작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여생의 시간을 아껴서 사랑과 희망, 인간과 영성, 내 이웃들의 슬픔과 기쁨, 살아 있는 것들의 표정에 관해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김 작가는 코로나 사태에 있어서도 사회의 최하층을 걱정했다. 그는 “코로나 시대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엇갈리고 있고, 너무나 많은 예언들이 있다”면서 “다만 약육강식을 심화하는 방식으로 구조화하지 않길 바란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 할 수 있는 더위가 최하층부를 강타할까 그게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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