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템(064350) 전환사채(CB)의 일반청약이 진행된 지난 15일. 한 증권사 창구에 A법인 대리 고객이 1,655억원의 거금을 들고 찾아왔다. 현대로템 주가가 오르면서 수익률이 좋아질 것으로 전망되자 청약 가능한 최대 금액을 증거금으로 맡긴 것이다. CB는 일정 기간 이후 발행회사의 신주로 바꿀 수 있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도 노린다. 현대로템 주가가 주식전환 가능일인 다음달 17일까지 16일 종가(1만5,100원)를 유지하면 A법인은 35만8,000주를 배정받아 대략 19억원의 차익을 손에 쥘 수 있다. ★관련기사 3면
이처럼 초저금리 기조와 막대한 유동성이 결합하며 자본시장 곳곳에서 이상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16일 “과할 정도로 돈의 쏠림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기업공개(IPO) 시장에 2조원 이상의 뭉칫돈이 잇달아 몰리는가 하면 CB·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 공모에도 돈이 밀려들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 현대로템 CB 일반청약에는 1,655억원 모집에 7조8,986억원이 몰려 47.72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현대로템은 3년 연속 적자를 내면서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CB 발행을 결의한 3월 말 대비 주가가 50% 이상 뛰면서 투자자들이 대거 몰린 것이다.
IPO 시장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SCM생명과학 청약에는 2조4,936억원의 증거금이 들어왔고 경쟁률도 814.91대1(일반기준)에 달했다. 엘이티(OLED제조장비 업체)는 2조6,598억원의 증거금을 모았고 청약경쟁률도 1,552.16대1이나 됐다. 2018년의 현대사료 이후 최고 경쟁률이다. 경영권 분쟁이 진행되고 있는 한진칼이 발행할 예정인 3,000억원 규모의 BW에도 투자자들이 대거 몰릴 것으로 IB 업계는 전망했다.
문제는 자본시장을 향한 자금 쏠림 현상이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이 CB나 BW를 찍어낸다는 것은 그만큼 자금사정이 좋지 않다는 증거인데 묻지마 투자가 나타나고 있다”며 “실물경기와 자본시장 간 괴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일범·김민석기자 squi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