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접경지역에 다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군은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지 하루 만인 17일 남북교류 협력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 지역에 군대를 다시 진출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이날 ‘우리 군대는 당과 정부가 취하는 모든 대내외적 조치들을 군사적으로 철저히 담보할 것’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미 지난 16일 다음 단계의 대적 군사행동 계획 방향에 대하여 공개 보도하였다”며 “17일 현재 구체적인 군사행동 계획들이 검토되고 있는 데 맞게 다음과 같이 보다 명백한 입장을 밝힌다”고 위협했다.
북한이 2018년 평창의 봄을 상징하는 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며 남북관계의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은 만큼 9·19남북군사합의를 무력화하기 위한 군사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대남 도발을 주도하고 있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까지 겨냥해 “철면피한 궤변” “뿌리 깊은 사대주의”라며 막말을 쏟아낸 것도 대화보다 군사적 긴장감을 통한 대남 강경 노선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강한 의지로 해석된다.
━ 남북 역린 '서울 불바다' 소환한 北 |
북한군은 대적 군사행동 계획으로 “공화국 주권이 행사되는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에 이 지역 방어 임무를 수행할 연대급 부대들과 필요한 화력구분대들을 전개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북한군은 연대급 규모의 포병 및 기갑부대를 개성과 금강산 일대에 배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울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170㎜ 자주포(사거리 54㎞)와 240㎜ 방사포(사거리 60㎞ 이상) 부대를 배치해 남한을 압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2003년 개성공단 착공 전까지 개성과 판문읍 봉동리 지역에 2군단 소속 6사단, 64사단, 62포병여단을 배치한 바 있다.
실제 북한 조선중앙통신사는 ‘파렴치의 극치’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입 건사를 잘못하면 그에 상응하여 이제는 삭막하게 잊혀져가던 서울 불바다설이 다시 떠오를 수도 있고 그보다 더 끔찍한 위협이 가해질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1994년 3월 판문점 남북특사교환 실무접촉에서 당시 북측 대표였던 박영수가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할 당시 개성 일대에는 포병부대가 주둔해 있었다. 당시 이 발언으로 남북관계는 얼어붙었고 남한 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북한군은 또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복구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훈련을 재개하겠다고 밝혀 남북 간의 우발적 무력충돌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북한군은 “북남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에서 철수하였던 민경 초소들을 다시 진출·전개하여 전선 경계 근무를 철통같이 강화할 것”이라며 “서남해상 전선을 비롯한 전 전선에 배치된 포병부대들의 전투직일근무를 증강하고 전반적 전선에서 전선경계근무급수를 1호전투 근무체계로 격상시키며 접경지역 부근에서 정상적인 각종 군사훈련을 재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대남적대 분위기 선전전 열 올리는 北 |
북한 정권은 심각한 경제난의 원흉을 남한 측에 돌리고 연락사무소를 폭파함으로써 주민들의 불만을 달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집권 후 주민들에게 윤택한 삶을 약속했지만 경제 발전은 고사하고 북한 내 식량 부족 문제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9일(현지시간) 북한의 식량난 해소를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대북제재를 재고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대남 강경 노선은 김 제1부부장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주영국 북한대사관 영사 출신인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북한군부가 이렇게 순식간에 ‘계획보고-승인-계획이행-주민공개’를 일사천리로 처리한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며 “지금까지 북한군과 김정은 사이에는 제3의 인물이 없었으나 이제는 김여정이 있다. 김여정의 한마디에 북한 전체가 신속히 움직이는 새로운 지휘구조를 알리고자 한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