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의 재원이 되는 고용보험기금에 정부가 총 4조6,740억원을 보전액 명목으로 넣는다. 특히 3조1,000억원은 국채를 발행해 ‘꿔오는’ 돈이다.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건전성 문제는 일차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쇼크가 원인이지만 문재인 정부의 사회안전망 강화, 재정 투입형 일자리 정책 사업이 기금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고용보험기금이 실업급여를 중심으로 작동하도록 사업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고용보험기금, 빚까지 낸다=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서울경제가 18일 분석한 결과 고용보험기금 보전을 위해 계획된 예산은 총 4조6,740억 원이다. 3차 추경에서 들어가는 보전액은 지난해 고용보험기금 총 지출규모(13조9,515억원)의 33.5%에 달한다. 재정을 직접 투입하는 일반회계 전입금으로 3,700억원이 들어가며 매년 남은 보험료 수입으로 조성한 적립금에서 1조2,040억원을 찾아 사용하기로 했다.
고용보험기금 사상 처음으로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3조1,000억원을 보전받는데 이는 모두 ‘빚’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만들어 고용보험기금에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을 발행해 만든 재원으로 고용보험기금을 보전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고용보험기금은 매년 남은 보험료 수익을 적립해 주식·채권 등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남은 적립금은 총 7조3,532억원이다. 하지만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2조87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는 적자 규모가 2조1,881억원(1차 추경 기준)으로 커져 적립금은 5조원대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 고용부 관계자는 “기금은 일차적으로 여유자금이 있어야 고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3조원 정도를 융통하면 여유자금을 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적자에 우선 빚을 내기로 결정한 셈이다.
◇코로나19로 재정 필요하다지만…‘쌈짓돈 예산’ 비판도=고용보험기금 보전액이 늘어난 일차적 이유는 코로나19에 따른 고용 타격이다. 구직급여 예산이 12조9,095억원으로 2차 추경 대비 35.7% 늘었고 휴업수당을 기금에서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은 9,201억원으로 2,552.2%나 늘었다.
하지만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악화를 가져온 원인 중 하나는 그동안 재정 사업으로 추진했어야 하는 사업들을 기금 재원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에게 목돈을 만들어주기 위해 근로자·사용자·정부가 함께 적금을 붓는 ‘청년내일채움공제’나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등 재정 투입형 일자리 창출 사업들이 고용보험기금을 재원으로 쓰고 있다. 출산휴가·육아휴직·배우자출산휴가 시 돈을 주는 ‘모성보호급여’도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출된다. 모성보호급여의 재원은 심지어 실업급여 계정에서 나간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추진한 사회안전망 강화와 재정 투입 일자리 정책으로 고용보험기금 부담은 더욱 늘었다. 2년형까지밖에 없던 청년내일채움공제에 3년형이 추가(2018년 3월)됐고 성장·유망업종에만 지원되던 청년추가고용장려금도 전 업종으로 확대(2018년 6월)됐다. 출산휴가급여 상한액은 18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올랐다(2020년 1월). 육아휴직의 경우 2017년 9월 첫 3개월 급여를 두 배 인상(소득대체율 40%→80%)한 후 2019년 1월 아빠 육아휴직보너스제의 상한액을 20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인상했다.
노사가 보험료를 납부해 조성한 고용보험기금을 정부가 일자리·사회안전망 강화 정책에 사용해 ‘생색’을 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임이자 미래통합당 의원은 “고용보험의 일차적 목적은 구직급여”라며 “최근 기금 고갈 우려는 재정 건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사회안전망 강화 정책이 견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털어낼 사업 털어내자” 목소리는 높지만… ‘돈은 어디서?’=총리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서도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건전성을 위해 사업을 교통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모성보호급여 사업을 고용보험기금에서 제외하고 일반회계(재정사업)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업 예방, 고용 촉진, 직업능력 개발이라는 고용보험의 목적에 맞게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건전성 문제는 노사로부터 모두 제기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용보험기금이 각종 정책을 담는 그릇이 된 것은 정부 일반회계의 재정 건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인 만큼 일반회계 사업으로 떼어내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모성보호급여 예산만 하더라도 2016년 9,297억원에서 올해 1조5,432억원으로 폭증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모성보호급여는 여성 고용과 일 가정 양립을 위한 것으로 고용보험법이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출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고용부도 정부 지원을 더 해달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