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전용 49㎡는 지난 5월 6억3,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됐다. 대책 발표날인 17일에는 한 임차인이 약 2억원 오른 8억2,000만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마포구 공덕자이 전용 59㎡도 전세계약이 4월 말 5억9,800만원에 체결됐으나 18일에는 6억5,000만원으로 1억원가량 올랐다. 재건축 단지에서는 2년 의무거주 요건을 맞추기 위해 집주인들이 세입자에게 ‘재계약 불가’를 통보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6·17대책’이 전세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세 놓을 매물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벌써부터 ‘대책발(發) 전세난’이 나타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시장 불안은 이들 지역만이 아니다. 송파구 잠실 일대 중개업소 관계자는 “트리지움 전용 84㎡의 경우 전셋값이 최근 1억원 이상 훌쩍 뛰었다. 6·17대책 발표 전인 1일 8억7,000만원에 거래되는 등 9억원 전후로 형성됐던 전세가는 대책 발표 이후 10억원 이상, 최대 12억원까지 치솟았다”고 말했다. 이번 대책이 전세 폭탄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갈수록 자취 감추는 전세매물=서울경제가 서울 등 수도권 주요 지역 전세시장을 조사한 결과 전세매물이 씨가 마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의 경우 지난달 15억3,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됐던 전용 84㎡가 최근에는 17억원대까지 올랐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래미안대치팰리스 전 가구 중 전세매물은 1~2건으로 손에 꼽을 정도”라며 “대책 이후 문의는 계속 들어오는데 매물이 없다. 매물 자체가 없으니 호가가 얼마라고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입주물량이 많은 강동구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서울 강동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매물은 거의 씨가 말랐다. 여기뿐 아니라 송파·강동·미사·하남 등 이 근방이 다 그렇다”며 “전체 단지에서 1~2개밖에 매물이 없으니 ‘부르는 게 값’이 됐다. 한 달 새 5,000만~1억원 정도는 오른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분당·판교 등 수도권의 인기 주거지도 마찬가지다. 판교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매물이 단지마다 1~2개씩 나오는 정도다. 그나마 나오면 바로 소진된다”며 “월세도 매물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세난은 정부가 지난해 6월 말 분양가상한제를 언급한 후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로또 분양을 노린 수요에다 대출규제 때문에 전세로 돌아선 수요가 증가하고, 여기에 공급물량은 줄면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며 전세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이다.
◇‘6·17대책’으로 직격타 맞은 전세시장=이런 가운데 정부의 6·17대책으로 전세공급량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재건축 조합원이 분양신청을 하려면 의무적으로 2년 이상을 거주하도록 했다. 재건축 단지들은 학군·교통 등 입지적 이점을 갖춘 대신 연식이 오래돼 전셋값이 인근 시세 대비 저렴하다. 이로 인해 이주 전까지 안정적인 전세공급원 역할을 했지만 이번 대책으로 집주인들이 기존 세입자를 대거 내보내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심지어 세입자를 내보내고 전입신고를 한 뒤 집을 공실로 비워두겠다는 집주인들도 나타나고 있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규제 강화로 인한 전세난도 우려된다. 정부는 비규제지역을 포함한 전 지역에서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도록 했다. 또 8년 장기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감면 혜택을 조정대상지역에서 없애고, 주택 양도 시 추가 세율을 적용받도록 하는 등 임대사업자 유인책도 대거 거둬들였다. 장기 전세물량의 주요 공급원 역할을 맡던 주택임대사업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갭투자 규제 역시 전세공급 부족의 한 요인이다.
정부는 여기에 전세대출을 받은 세입자가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에서 3억원 초과 아파트를 사면 대출보증을 즉시 회수하도록 했다. 전셋집에 살던 무주택자가 집을 매수하면 즉시 전세대출을 전액 상환해야 하는 것. 이 때문에 목돈을 쥔 현금부자가 아니면 사실상 세입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정부가 추진하는 ‘임대차보호 3법’도 벌써부터 전세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재산 손해를 우려한 집주인들이 인상분을 미리 받는 식으로 단기간에 가격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서울은 근본적으로 입주물량이 감소하는데다 금리 인하, 임대차보호법 추진 등으로 집주인들이 월세 전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며 “여러 요인 탓에 서울은 계속 전세가가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진동영·양지윤기자 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