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추경안 처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국민의 삶을 지키는 데 절실하고 시급한 일”이라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도록 국회가 지혜를 모아주시길 간곡히 부탁 드린다”고 했다. 지난 21일 “(3차 추경안의) 6월 통과가 무산돼서는 안 되며 비상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한 지 불과 이틀 만에 추경 통과를 또 촉구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이처럼 다급하다고 강조하는 3차 추경의 효과에 대해 국회 예산정책처는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대 뉴딜정책의 상징인 후버댐에 견줘 ‘후버 식 디지털 댐’으로 칭한 한국판 뉴딜 사업에 커다란 물음표가 던져진 셈이다.
이날 예정처는 4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속이 타 들어간다”며 낸 3차 추경안에 대해 “사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편성됐는지 국회 심의를 통해 면밀히 검토돼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법대로 “국회 심의부터 받으라”는 것이다. 특히 23조8,000억원이라는 역대 가장 큰 빚을 낸 추경안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성장·고령화가 시작돼 막대한 복지지출이 예정돼 있고 국제무역을 통해 부를 창출할 구조적 현실을 고려하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예정처는 특히 역대 최대 규모(35조3,000억원)의 추경으로 추진할 △고용안정특별대책(9조4,000억원) △한국판 뉴딜 사업(5조1,000억원) △금융안정 패키지 후속 조치(5조원) 등의 세부 사업이 부실하다고 진단했다.
이번 추경안에 따르면 고용대책은 약 155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예정처는 이에 대해 “5월 기준 전체 실업자 수 127만8,000명을 초과하는 규모이고 경기가 좋을 때도 실업자 수가 100만명 정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볼 때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상당수는 일회성 단기 공공부조 성격에 그치게 될 우려가 있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사업설계를 보완할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추경이 통과된 후 쏟아질 직접 일자리만 55만개로 평가하며 “노동시장의 초과 공급이 우려된다”고 평했다. 또 “직접 일자리 사업의 일부는 다른 재정 사업과 유사하거나 중복될 우려가 있다”고 했고 “보조·위탁·출연 등 민간기관을 통한 직접 일자리 사업은 채용·보수지급 등 사업 전반의 부정행위에 대한 관리 감독의 필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예정처는 특히 문 대통령이 ‘후버 식 디지털 댐’으로 칭한 한국판 뉴딜 사업의 상당수에 대해 “부실하거나 효과가 불확실하다”며 “신산업·신기술을 육성하기보다 이미 범용화된 기술을 단순 활용하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가재정법에 따라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된 9개 사업(약 9,343억원)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 운용지침 제23조에 따라 사업 규모와 수단 등 타당성을 검토하는 사업계획의 적정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타가 면제된 사업이 적절한지 재검토하라는 말이다.
이와 함께 △그린뉴딜 유망기업 육성 △스마트 그린도시 △산업단지 태양광발전 사업자 사업 △스마트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호흡기 전담 클리닉 설치·운영지원 사업 등은 ‘사업계획이 부실한 사업’으로 분류했다. 또 ‘사업효과가 불확실한 사업’에 △인공지능(AI) 바우처 지원 △빅데이터 플랫폼 및 네트워크 구축 △전국 여행업체 실태 전수조사(1개월 운영) 등을 분류하고 “철저한 사업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타격을 받은 산업계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금융안정 패키지 후속조치’도 면밀히 설계하고 검토하라는 지적이 나왔다. 예정처는 “위기산업과 기업에 충분한 유동성이 공급될 수 있도록 세부계획이 설계됐는지를 중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없는 한계기업까지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국가재정의 효율성과 건전성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3차 추경을 속전속결로 처리할 태세지만 미래통합당은 당정청이 부실한 추경안을 밀어붙여 통과할 경우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윤창현 통합당 의원은 “정부가 올 들어서만 3월·4월·6월 세 차례 추경안을 내며 사업이 중복되거나 효과가 부풀려진 사업이 많다”며 “여당이 이마저도 ‘일하는 국회’를 내세워 졸속으로 넘기려 하자 예정처가 세금을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제동을 건 것”이라고 말했다. 류성걸 의원도 “추경이 그렇게 급하다면 졸속 처리할 게 아니라 야당과 상임위원회를 구성해 법대로 심사를 받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구경우·허세민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