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의 피해 금액을 금융회사가 배상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였던 간편송금업자에도 보이스피싱 방지 의무가 부과된다. 보이스피싱 수법이 나날이 지능화돼 ‘나도 모르게’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늘어나자 이를 근절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 같은 정책에 금융권은 경찰도 아닌데 배상까지 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금융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법무부·방송통신위원회 등은 24일 이 같은 내용의 보이스피싱 척결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보이스피싱에 대한 금융회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데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고의·중과실이 없는 한 금융사가 원칙적으로 배상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이용자의 잘못이 아닌 신용·체크카드의 복제,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카드가 부정 사용될 경우 카드사에서 사용금액을 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스피싱에도 이를 적용하겠다는 취지다. 단 정부는 금융사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이용자의 손해분담 원칙, 도덕적 해이 방지 등을 고려해 피해액이 합리적으로 분담될 수 있도록 조정해 관련 법안을 연내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입장이다.
배상 외에 금융사의 보이스피싱 예방 의무도 강화된다. 일정한 수준 이상의 금융사에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을 구축하도록 의무화하고 보이스피싱 의심 계좌에 대해 자체적으로 임시 조치를 취할 의무도 부여한다. 이에 따라 가령 앞으로는 거액의 돈이 이제까지 한번도 거래된 적이 없는 사람에게 송금될 경우 금융사의 FDS가 이상거래로 탐지해 금융사가 고객에게 전화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FDS 구축이 미흡해 보이스피싱 피해를 키울 경우 금융회사는 금융위로부터 과태료 등 시정·제재 조치를 받게 된다. 이 같은 내용은 00페이 등 간편송금업자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대신 송금 규모, 자산 규모 등을 고려해 일정 수준 이상의 업체가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정부는 보이스피싱에 악용될 가능성이 큰 사망자, 폐업 법인, 출국 외국인 명의의 휴대폰 조기 정리도 강화하기로 했다. 현행 1년에 2번 진행하는 휴대폰 본인 확인 전수조사를 3번으로 늘린다. 외국인 단기 관광객의 휴대폰은 한국에서 떠날 때 즉시 정지된다.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번호의 사용 중지도 통상 4~5일 걸리던 것을 2일 이내로 줄인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 일제 단속에도 나선다. 오는 8월20일부터 보이스피싱에 악용되는 대포통장을 팔거나 빌려주면 5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등 처벌 기준도 강화했다.
정부가 이처럼 보이스피싱에 맞서 강경한 대책을 쏟아낸 것은 보이스피싱 수법이 갈수록 정교화되는 반면 피해는 심각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열린 보이스피싱 척결방안 행사에서 “저에게 ‘은성수 금융위원장’ 이름으로 (보이스피싱) 전화가 왔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은 위원장 본인에게 ‘은성수’ 이름을 사칭해 범죄를 저지르려 한 것이다. 은 위원장은 보이스피싱범이 악용할 원격 제어 애플리케이션, 악성 앱을 탐지해 제거하는 신한은행의 ‘Anti-피싱 플랫폼 모니터링기술’ 등을 매우 효과적인 서비스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당장 금융권에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크다. 금융당국은 보이스피싱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어도 금융사가 피해자에게 배상하되 보이스피싱범이 잡히면 금융사가 구상권을 청구하도록 할 방침이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금융사가 배상해야 하는데다 보이스피싱의 본거지가 해외에 있어 구상권을 청구해도 범죄수익 환수가 어렵다. 금융사를 중심으로 과도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취지는 좋으나 금융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조건 배상해주라는 것은 과하다”며 “보이스피싱 수법이 다변화되는 상황에서 은행이 속수무책으로 무조건 배상해줘야 하는 경우, 고객이 악용하는 경우 등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언급했다.
/김지영·이지윤기자 ji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