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저금리 기조에 따른 경영환경 악화로 고전해온 국내 은행들이 올 하반기에도 수익성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경기 부진과 금융상품 투자 위축으로 이자·비이자이익 모두 성장 여력이 적은데다 마이데이터 산업 도입, 빅테크의 금융 경쟁력 확대 등으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코로나19 금융 지원의 선봉에 선 은행권은 ‘끊임없는 대출 공급’과 ‘리스크 관리 강화’라는 상반된 목표도 안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펴낸 ‘2020년 하반기 은행 경영환경 전망 및 주요 경영과제’ 보고서에서 “올 하반기에도 경기 부진과 저금리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여 사실상 국내 은행의 수익성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보고서를 쓴 서정호 금융연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국내 은행은 저조한 수익성에도 높은 자산 건전성으로 양호한 손실흡수능력을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극적인 경기반등이 없는 한 일상적인 대출수요가 위축되고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며 은행들의 수익성 회복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은행의 제1 수익원인 이자이익은 이미 성장이 한계에 달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올 1·4분기 1.46%로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신규취급액 기준 은행의 예금·대출 간 가중평균금리 차이를 뜻하는 예대마진도 지난 4월 기준 1.6%에 불과하다. 2008년 12월(1.31%) 이후 최저치다. 은행의 고유한 기능인 수신과 대출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위기로 경제 부진이 짙어지고 부실채권이 늘면서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이 커지는 것도 은행에는 적잖은 타격이다. 금융연구원은 올해 코로나19 타격으로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0.5%까지 떨어지면 국내 은행의 연간 대손비용은 전년(1조6,000억원)보다 4,000억원에서 7,000억원가량 불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3일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은행권에 “코로나19 영향 장기화에 대비해 대손 충당금 적립 등을 통해 손실흡수 능력을 확충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손충당금 적립액이 늘면 당기순이익은 줄고 신규대출 공급 여력도 쪼그라든다. 이는 은행 입장에서는 다시 이자이익 감소로, 은행 대출이 필요한 수요자 입장에서는 대출 문턱이 높아지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임형준 금융연 자본시장연구실장은 “경제전망 하향이 기대신용손실에 반영되면서 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코로나19 회복이 지연되면 은행의 수익성과 건전성이 악화되고 실물부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금융업을 둘러싼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지고 있다. 올 하반기에만 마이데이터 산업(본인신용정보관리업) 도입, 오픈뱅킹 확대 등이 예정돼 있어 이제까지 은행이 독점했던 고유 업무 영역은 갈수록 좁아지는 형국이다. 특히 카카오·네이버 등 대형 플랫폼 사업자와 통신사, 유통업체까지 간편결제·송금 기능을 토대로 금융 플랫폼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서 연구위원은 “고객 접점이 플랫폼기업으로 대거 이동하면 은행들은 상품 제조사 역할에 그칠 것”이라며 “은행들이 플랫폼 기업에 사실상 종속되는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업의 판이 새로 쓰이는 현실에서 은행들은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플랫폼 경쟁력을 높이고 △맞춤형 금융상품·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등의 다차원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규제당국도 디지털 금융 시대에 알맞는 규제를 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서 연구위원은 “새로운 시장질서가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금융 시스템과 금융질서가 위협받지 않도록 규제변화 완급을 조절하고, 은행의 본질적 기능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